경남 진주의 1971년 생 여성 A씨는 국가 의무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으면서 매번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며칠 전 몸에 이상을 느껴 별도로 암 검진을 받았는데 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찍어내듯 진행되는 의무 건강검진이 수검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최선책은 아니라는 시선이 나온다. AI 이미지.
A씨는 허프포스트코리아에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암 확진 판정을 받으니 너무 억울하다"며 "국가에서 실시하는 의무적 건강검진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관련 법규인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에게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실상 준강제 제도인 셈이다.
여기에 실손보험이나 암보험에 가입할 때 심사과정에서 최근 검진기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검진을 받지 않으면 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오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사실상 의무로 강제되는 건강검진을 두고 결과가 정확하고 믿을 만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건강검진 체계는 규모로 보면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직장인은 2년마다 일반건강검진을 받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6대 암을 검사하는 암검진을 별도로 지원받는다.
하지만 건강검진은 많아졌지만, 정확도가 그만큼 좋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허프포스트코리아에 "건강검진의 횟수가 많으면 무조건적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거나,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단순한 해석은 무리가 있다"며 "건강검진을 무차별적으로 늘리는 방향은 건강보험 재정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의무 건강검진이 병을 조기에 진단해 예방하기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어 본래 취지가 빛을 바래고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의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립암센터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2023년 9월 개최한 '우리나라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라는 보건의료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건강검진 제도의 대표적 문제점으로 비효율적 검사항목 구성에 따른 중복검사와 재정낭비를 지목했다.
특히 일반 건강검진 수검자 가운데 20% 이상이 이미 고혈압과 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획일적으로 불필요한 검사가 반복돼 재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강은교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 선임연구원은 이 포럼에서 "민간 건강검진 센터들 중에는 수검자들이 평소 갖고 있는 특정 암이나 질환에 대한 두려움, 검진 효용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자극해 과도한 검진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나친 검진은 과잉치료로 이어져 합병증이나 의료비 증가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암검진 항목에 포함돼 주기적으로 검사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생존율이 개선되지 않는 대표적 질병으로는 자궁경부암이 꼽힌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3년 주기로 검사할 것을 권하고 있고, 국가 암검진은 2년 주기로 자궁경부암을 검사가 이뤄진다. 의료계의 권고 주기보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암검진의 주기가 더 빠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건강검진이 자주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궁경부암의 5년 생존율이 왜 올라가지 않는지에 대해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검진을 향한 이와 같은 지적들은 건강검진을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검진 재원을 어떻게 더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써서 질병을 예방하고, 남은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더 나은 의료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A씨의 사례처럼 성실하게 일반검진을 받고도 암을 놓치는 사례가 되풀이된다면 전체 건강검진 체계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과잉검진을 강요하고 이행하지 않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현재의 제도 체계는 의료 사각지대를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검진 성과평가체계를 검증하기 위해 외부연구 용역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노력이 좀 더 치밀하게 이뤄진다면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환자들의 혜택도 늘어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검진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바탕으로 걸러내는 것이 국민의 생존율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