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정민철씨가 쏘아 올린 '기탁금 인상 반발'이 이재명 대통령의 'SNS 훈수'로 이어지며, 급기야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민주당은 청년 기탁금 기준을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지지층 일각에서는 "시스템이 붕괴된 게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당사자의 눈물 호소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곧장 선거 규칙을 뒤집히게 됐기 때문이다.
20일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정민철씨와 관련된 이재명 대통령의 글이 '당무 개입'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논란의 발단은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4일 최고위원 후보 예비경선 기탁금을 기존 500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시작됐다. 다만 만 39세 이하 원외 청년 후보에 한해서는 기탁금을 50% 감면한다.
본 경선에서 내야하는 기탁금까지 합치면 당대표 후보는 1억 원, 최고위원 후보는 5천만 원을 내야한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당대표 4천만 원, 최고위원 1500만 원)과 비교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급증에 따른 선거 비용 보전을 위한 불가피한 행정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고위원에 출마한 정민철씨가 기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SNS와 유튜브 채널 등에서 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 일반 계좌'를 공개하며 후원금을 모금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정씨는 받았던 돈을 모두 반환하겠다면서 "금수저가 아니면 출마도 못 하느냐"고 눈물을 흘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직접 참전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이 대통령은 19일 "청년 후보들이 힘들어한다니 아쉽다"며 민주당 선관위에 기탁금을 과거 수준으로 되돌려줄 것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의 글이 알려지자 민주당 선관위는 오는 21일 전체 회의를 열고 기탁금 액수를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대통령의 엑스 글을 두고 "정청래가 대표될까 봐 어지간히 불안한 모양"이라며 "누가 봐도 당무 개입인데 아니라고 우긴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이어 "(이 대통령이) 특정 후보 편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원들조차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며 "차라리 그냥 '정청래 떨어뜨려 주세요' 하라"고 덧붙였다. 정민철씨가 친김민석계 성향을 띄고 있지 않았다면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글까지 올려가며 정당성을 강조해줬겠냐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정씨의 상황이 알려지자 김민석 전 국무총리와 친석계인 이건태 민주당 의원 등이 당 지도부를 향해 기탁금 하향을 요구하고 나섰다.
야당의 공격에 이 대통령은 특정 후보를 위한 게 아니라 당원으로서 당의 제도에 대한 의견 개진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병도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이 대통령께서 청년 후보 기탁금과 관련하여 의견을 말씀하신 것은 한 분의 당원으로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또 가능한 일"이라며 장 대표와 국민의힘의 '당무개입' 주장에 선을 그었다.
◆ 정치인 정민철씨의 '남 탓'
이번 사태를 두고 먼저 정치인 정민철씨의 '자기 책임'을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는 인상된 기탁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 일반 계좌'를 공개해 지지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했다. 이는 고의 여부를 떠나 명백한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다.
정치자금법 제45조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계좌로 후원금을 모금한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 일원이 되겠다는 최고위원 후보자가 정치자금법의 ABC조차 몰랐거나 무시했던 것이다.
심지어 정씨는 지난 19일 당권주자인 정청래 전 대표가 쏟아진 후원금에 감사 인사를 한 것을 두고 "기성 정치인은 몇억을 후원받았다고 과시하는데 원외 청년 후보는 선거 후원회조차 열기 어렵다. 원외 청년 후보는 사실상 후원금을 받을 수도 없게 만든 한국 정치의 장벽"이라고 현행 정치자금법을 비판했다. 정씨는 지난 18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민주 진영 유튜브들이 저를 공격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스스로 '현행법 위반'을 저지르고, '약자 서사'를 방패 삼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인지 깊은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실제 민주당 지지층 일각이 많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준비 부족을 약자 서사로 포장해 당의 규칙을 흔들려는 떼쓰기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경기도 하남시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청년정치인 옥지원 국민의힘 하남을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나 역시 2023년 청년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며 기탁금 1천만 원을 냈다. 당시 내게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장예찬 후보가 유력하다는 분위기를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옥 위원장은 이어 "국민의힘은 당대표 기탁금이 1억 원, 최고위원은 4천만 원, 청년최고위원은 1천만 원인데 (정씨는) 청년이라 일반직 최고위원 기탁금을 50% 감면받아 1천만 원만 내면 된다. 국민의힘 기준이었다면 50%를 감면받아도 2천만 원이다"라며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도전이었고, 그것이 룰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씨가) 비판받는 이유는 정치자금법을 몰라서 카드뉴스를 올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도전에 필요한 비용조차 스스로 감당하려는 자세보다 남에게 기대려는 모습이 먼저 비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야권의 한 원외 청년 정치인도 "기탁금 금액이 올라서 20대에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최고위원에 출마하겠다는 정치인이 정치자금법 규정을 확인도 안 하고 모금을 하려고 했다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자신의 선거에 관련된 일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청년 정치인이 만드는 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층 일각에서는 정씨와 관련해 논란이 불거진 본질은 기탁금을 모으려는 '잘못된 방법'에 있는데도 이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기탁금의 '액수' 문제로 바꾸려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더구나 정씨가 그동안 유시민 작가의 비평을 비판할 때 '극언'을 서슴지 않았으면서 자신에 대한 친민주당 성향의 유튜버들의 '검증'과 '비판'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이 일부 민주당 지지층들의 관점에서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보이는 이유로 보인다.
정씨는 지난 16일 뉴스1 정치유튜브 팩트앤뷰에 출연해 유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의 정계개편 등을 비평한 것을 두고 "더 나아가면 저는 굉장히 위험한 범죄 스토킹 형식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라고 말했다.
◆ '소수결' 강행, '당비 미납 예외',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 엉망이 된 민주당
민주당 전당대회가 사실상 '엉망'이 된 것은 비단 정씨의 사례뿐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청(친정청래)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대표 선출 방식으로 '선호투표제' 도입을 의결했다. 당시 박규한 최고위원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 대신 사실상의 '소수결'을 강요당했다"며 비판했다.
여기에 피선거권 자격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당비 납부 기준'마저 무너졌다. 당규상 권리행사 시행일 '입당 6개월'과 '입당 1년 이내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에게만 피선거권이 주어지지만 민주당은 당비 미납으로 자격 논란이 불거진 송영길, 김용 후보에 대해 "예외적으로 출마를 허용하겠다"며 빗장을 열어줬다. 두 사람이 윤석열 정권 시절 무도한 검찰 수사로 고초를 겪었다는 게 명분을 내세웠다.
송영길 의원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모두 당규에 규정된 전당대회 출마 자격을 확인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은 없었고 자신들의 출마를 허용해주지 않으면 "민주당이 민주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조승래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서 "2022년 전당대회 박지현 당원에 대해 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사례와 이번 지방선거 고양시장 후보로 당에 경선 신청한 이재준 당원에 대해서 복당 기일 미도래로 불허한 사례 등이 있다"며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건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우리당이 공정한 정당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당의 근간이 되는 전당대회 규칙들이 잇달아 누더기가 되는 상황에서 정씨의 기탁금 논란과 이재명 대통령의 SNS 훈수는 '민주당 전당대회'의 수준을 다시 한번 떨어뜨릴 셈이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이날 JTBC 장르만여의도에 출연해 기탁금을 낮춰 청년들의 기회를 넓혀줘야 한다면서도 "현재 민주당 전준위나, 선관위가 미리 여러 가지를 살펴서 결정하지 않고 결정된 다음에 뒤집어지고 재논의 하는 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떼를 쓰면 들어주고, 권력자가 한마디 하면 원칙이 뒤집히는 민주당을 보면서 '시스템'이 아닌 '인치'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YTN뉴스 나우에서 "대통령이 얘기했다고 해서 갑자기 기탁금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은 다 반대하는데 대통령 의견 때문에 바뀌는 민주당 구조가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통령께서 전당대회에 관심이 너무나 많고 결과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게 너무나 절실해서 자꾸 의견을 내신다고 해석되는 게 국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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