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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으로 당근을 맹글어 봤습니다.”

[호텔리어 조정욱의 컨시어지 노트] “당근으로 당근을 맹글어 봤습니다”, 화면이 여행으로 이어지는 시대
AI로 제작한 후덕죽 셰프와 숙박객들.

지난 겨울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의 5라운드 무한 요리 지옥 미션, 일명 ‘당근지옥’에서 후덕죽 셰프께서 무심코 내뱉은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소위 ‘대박’을 예감했다. 사실 후 세프의 넷플릭스 예능 흑백2 출연을 성사시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나 설득은 후 세프께서도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내가 처음 후 세프를 흑백요리사 2에 출연시키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방송 거의 1년 반 쯤 전이었다.

당시 호텔 식음업 업황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돌파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스타 마케팅의 효과를 과거 ‘욘사마’ 시절부터 보고 알아온 나는 방송 출연을 한사코 마다하는 후 세프를 설득하고자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던 터였다. 그리고 결국 후 세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마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구루(Guru, 스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욘사마. 아마도 젊은 세대는 이 이름을 아는 이가 많지 않겠지만, 20여 년 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영되던 때 욘사마의 인기는 지금의 BTS를 훨씬 능가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남이섬은 몰려드는 일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강준상(배용준 분)의 사진이라도 보려고, 그리고 그의 짝이었던 정유진(최지우 분)과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의 무대인 남이섬을 보기 위해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았다.

다시 후 셰프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흑백요리사 2’ 방송 이후 호텔 중식당의 풍경은 분명히 달라졌다. 일단 손님은 방송 이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후 셰프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분과 사진을 찍기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일부러 호텔을 찾아주신다. 드라마나 다큐, 유튜브에서 본 사람과 장소를 직접 보고 경험하기 위해, 유명한 셰프의 음식을 직접 맛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흐름을 ‘스크린 투어리즘’이라 부른다. 결국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이 호기심 때문에 불을 발견했고, 신대륙에 다다랐으며, 또 전기를 발명해 삶을 획기적으로 윤택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나는 AI 시대에도 끝내 기계가 인간을 넘지 못할 영역이 바로 이 자유의지이자 호기심이라고 본다. 요즘은 AGI(인공일반지능)이니 ASI(초인공지능)이니 하며 AI가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넘본다고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아무리 정교한 추천을 내놓아도 결국 그 화면 속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그 공간의 공기를 직접 느끼고, 그 음식의 맛을 직접 느끼고 싶어 비행기에 오르는 그 마음만큼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일 것이다. 호기심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동력이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라서, 예전부터 가던 곳이라서 떠나는 여행의 시대는 지나갔다. 신혼부부가 한 달짜리 ‘어디어디 살아보기’를 떠나는 시대, 전 세계의 보랏빛 아미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강릉의 어느 버스 정류장을 일부러 찾아가는 시대다.

다만 이런 흐름 속에서 한 가지는 꼭 새겨두고 싶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화면 너머의 경험을 내 것으로 가져와 재해석하는 호기심으로서의 여행을 하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크린 투어리즘의 진정한 묘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여행의 행복감은 분명 배가된다.

다시 후 셰프의 이야기. 그가 ‘당근지옥’에서 선보였던 미니 당근 딤섬은 지금도 호텔 중식당을 찾는 분들이 가장 먼저 요청하시는 인기 메뉴이자, 보는 순간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리게 되는 최고의 호텔 홍보 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작은 당근은 손님들 저마다의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자기만의 레시피로 아이들 간식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후 셰프께서 보여주고 싶었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화면 속 한 거장의 손끝에서 빚어진 작은 당근이 누군가의 식탁으로, 누군가의 추억으로 끝없이 다시 태어나는 풍경. 이것이야말로 스크린 투어리즘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자리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 조정욱은 앰배서더서울풀만 대표이사다. 25년차 호텔리어로, 삼성생명에서 해외 투자 기획 업무를 거쳐 신라호텔에서 서울·제주 총지배인과 호텔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22년, 한국 최초의 민영 호텔 '금수장'에 뿌리를 둔 앰배서더서울풀만의 전관 리모델링 재개관과 함께 대표이사로 취임해 중식당 '호빈'의 미쉐린 가이드 2년 연속 수록 등 주목할 성과를 이끌어냈다.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호텔에서 일해온 사람의 시선으로, 호텔을 조금 더 잘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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