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언제나 기성세대의 걱정거리였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청년을 향한 한숨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은 종종 이해보다 단정으로, 대화보다 훈계로 흘러갔다. 오늘날 '무개념 MZ'와 '극우화된 20대'라는 말 역시 그런 오래된 오만의 최신 버전인지 모른다.
현실의 벽 앞에 서 있는 20대 남성과 여성. AI 합성 이미지.
청년을 향한 이런 시선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일터와 정치권에서 20대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집단으로 분류되곤 한다. 회사에서는 조직을 위한 헌신 대신 칼퇴근과 권리만 쏙 챙기는 '개념 없는 MZ'로 찍히고, 정치권에서 특히 20대 남성은 약자에 대한 연대 대신 '이대남' 프레임을 앞세워 우경화된 집단으로 비난받는다.
이런 시선은 뉴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예능과 광고, 유튜브에서도 MZ세대는 조롱과 풍자의 단골 소재가 됐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속 상식이 부족하거나 근무 시간 내내 에어팟을 낀 채 업무하는 직장인이나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에서도 키캡 만지작 거리는 MZ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과장과 풍자를 전제로 한 꽁트지만, 이런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웃음이라는 포장지 속에 'MZ는 철없고 이기적이다'라는 편견은 자연스럽게 확산한다. 어느새 청년 세대는 사회성이 부족해 교정이 필요한 문제 집단처럼 다뤄진다.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에는 은연중에 '가르치고 뜯어고쳐야 할 대상'이라는 오만함이 짙게 깔려 있다. 특히 20대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진보 진영의 대표 스피커로 불리는 정준희 교수가 최근 정치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던진 한마디는 상징적이다.
정 교수는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분석하던 중 20대 유권자를 향해 "설득이 아니라 권력으로 제압해야 한다"며 "권력이 밀어붙이는 방향을 따라가게 만들어야지, 이들을 설득해서 우리 권력을 지지하게 만드는 방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합법적인 방식으로 몽둥이를 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대 중반을 넘어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는 필자 역시 이 고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나 또한 일터에서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 이기적일까' 속으로 혀를 차거나, 뉴스 속 청년들의 표심을 보며 '세상이 말세다'라고 단정 짓곤 했다. 내 세대의 경험을 유일한 정답이랍시고 들이밀며 그들을 '덜 자란 존재'로 재단했던 것이다. 20대를 철없고 미성숙한 집단으로 바라봤던 내 시선 역시 한없이 게으르고 위험한 편견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이런 낙인과 배제의 논리는 낯설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자신들의 체제에 반하는 청년들을 '빨갱이', '용공분자', '종북'이라는 손쉬운 단어로 낙인찍었다. 자칭 진보라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향해 '우경화된 집단'이라 낙인찍고 심지어 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과거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독재 정권의 논리와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세대론 자체가 가진 위험성도 주목해야 한다. 20대 혹은 MZ라는 헐거운 주머니 하나에 수백만 명의 다양한 욕망과 복잡한 계급, 젠더 격차를 다 우겨넣고 뭉뚱그릴 수는 없다.
부모의 집 한 채가 자녀의 출발선을 결정하는 시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옛이야기가 된 시대. 평생 직장은 사라졌고 AI의 발전은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단군 이래 가장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에게 사회는 연대의 공간이 아니라 탈락하면 끝나는 경쟁의 무대가 됐다.
이런 현실에서 약자 배려 정책이나 할당제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아니라 자신의 몫을 줄이는 불공정으로 보이기 쉽다.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어려운 상황에서 청년들은 남은 기회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그 결과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강조하는 우파적 메시지가 적지 않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로 끝난 서울시장 선거 결과만 봐도 세대의 표심 변화는 있었다. 다만 정치권은 20대의 표심을 두고 현상의 문제만을 성토할 뿐 왜 일부 청년들이 민주화에 사실상 무관심하며 '공정'이라는 이슈에 그토록 민감한지 살피지 않고 있다. 실제 20대 남성을 사로 잡고 있는 정서는 '역차별'(피해의식)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청년 세대의 정치적 우경화는 실제한다. 사법부 습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부른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서 가장 많이 체포된 연령대가 다름 아닌 20대였다.
더 나아가 청년들의 분노가 언제나 정당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기득권 구조에 대한 좌절과 박탈감이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로 표출될 때도 있다. 일부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반페미니즘 정서 역시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백만 명의 청년을 통째로 '극우 세대'로 규정하는 것 역시 또 일반화의 오류다.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고 극우화됐다며 손가락질만 하는 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평등한 게임 규칙은 그대로 둔 채 플레이어들의 매너만 탓하는 비겁한 꼴이다. 진짜 무서워해야 할 건 구조를 보지 못하고 현상만 비난하며 청년 내부의 격차는 외면한 채 만만한 20대를 때리는 우리들의 비겁함일지도 모른다.
청년들을 대화 상대방이 아닌 교정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순간 우리는 앞으로 계속 마주할 '새로운 20대'를 이해할 기회를 잃는다. 약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불안과 분노가 사회적 약자를 향하는 순간 그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못된 생각에 대한 해법은 '몽둥이'가 아니라 '토론과 설득'이다. 청년들을 교정 대상으로 취급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오류뿐 아니라 그 오류를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까지 외면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성찰해야 할 대상은 청년을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려 드는 우리 자신의 '꼰대 렌즈'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