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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등산을 할 때, 한 사람은 속도를 내어 앞서가는데 다른 한 사람이 계속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으며 산행 속도를 늦추려 한다면 그 동행이 즐거울 리 없다. 지금 정부여당과 대법원의 관계가 딱 이 모양새라는 생각이 든다.

[허프 생각] 이재명 정부와 대법원의 '불편한 동행', 조희대 사퇴가 실마리 푸는 첫 단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의 국무회의 의결을 앞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을 두고 민주당과 대법원이 유례없는 정면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다수 의원들이 사법개혁에 반대한 조 대법원장의 자진사퇴와 탄핵을 언급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출근길에서 “법관의 재판을 악마화하지 말라”며 사법개혁 법안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조 대법원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미국 법원 신뢰도(35%)보다 우리나라(47%)가 높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는 조사 당시의 맥락을 생략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보인다.

조 대법원장이 언급한 미국의 법원 신뢰도 조사 결과는 2024년 12월 조사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관련 사건에 대한 결정을 뒤집으면서 불신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또한 한국갤럽의 법원 신뢰도 47% 역시 2025년 3월 조사로 당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지연에 따른 상대적 반사이익일 뿐이었다. 

조 대법원장의 주장과 달리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죄 관련 재판이 진행되면서 나타난 실제 민심은 차갑다. 2025년 12월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5%로, 신뢰한다는 응답(40%)을 압도했다. 1년 사이 신뢰도가 8%포인트나 급락했다. 오죽하면 내부 구성원인 법원 노조마저 최근 “대법원의 무능을 개탄한다”며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 성명을 냈겠는가.

국민이 느끼는 사법 불신은 이제 임계점을 넘었다. 12·3 내란이라는 헌정 파괴 행위 앞에서는 침묵하던 사법부가, 기득권을 견제하려는 법안에는 사활을 걸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김건희씨 사건이나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판결 등 일반적인 국민 법감정과 배치되는 재판 결과들을 보면서 “누구를 위한 법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본질은 간단하다. 그동안 견제받지 않아 왔던 사법부의 무소불위 권한에 책임을 묻고 사법부 결정에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자의적인 법 해석을 막는 법왜곡죄, 기본권 침해를 최종 점검하는 재판소원, 다양성을 확보할 대법관 증원은 모두 견제받지 않던 권력을 민주적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장치다.

사법개혁 내용에 대한 토론을 떠나 사실 조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순간, 자신의 거취를 고민했어야 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통해 대선 출마를 봉쇄함으로써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 했던 이 대통령의 당선은 국민들이 대법원에 내린 준엄한 심판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조 대법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사법부를 개혁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설득력 없는 항변에 불과했다. 

대법원이 주장하는 합리적 사법개혁의 실현을 위해 정부여당과 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부족했으며 오히려 갑작스런 법원장 회의 개최와 이 대통령 파기환송 재판 주심을 맡았던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임명 등으로 여권의 불신과 분노를 더욱 키웠다.

노태악 대법관 후임 인선을 두고 40일 넘게 정부와 대치하며 대법관 공백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조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사실상 ‘고립됐음’을 증명한다. 그의 임기는 대법원장 정년 나이 규정(70세)을 적용받아 어차피 내년 6월이면 끝난다. 

정부여당과 사법부가 불신을 넘어 증오의 단계로 진입한 지금, 1년 남짓한 임기를 고수하는 것이 사법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런 상황임에도 조 대법원장이 사퇴를 주저하는 건 자신의 사퇴가 정권에 대한 굴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의 사퇴는 누구의 승리나 굴복이라기 보다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자,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권과 사법부가 새로운 리더십 아래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결단이다.

갈등의 상징이 된 수장이 물러나야 비로소 사법개혁이 안착하고 법치가 바로 설 수 있다. ‘불편한 동행’을 끝내고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조 대법원장의 용단이 그 첫걸음이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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