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의 전략과 개별 기업의 이익은 언제나 일치할까. 계열사들이 자금과 사업 역량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것은 기업집단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룹 전체에 유리한 선택이 각 계열사의 주주에게도 최선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 상장 논란은 이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한다.
최근 솔리다임은 2027년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고 기업가치가 최대 15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상장을 포함한 자금 조달 방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먼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외부 자금을 유치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구상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상장의 필요성을 그룹 차원의 사업 확장과 투자 재원 확보로 설명한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 전략의 수혜와 비용은 각각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SK하이닉스 미국 낸드플래시 손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상장이 그룹의 성장과 기존 주주의 이익을 모두 충족하는 선택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말 순현금만 70조 원가량을 보유했다. 7월에는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으로 40조 원가량을 조달하기도 했다. 물론 이 자금이 모두 솔리다임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등 핵심 사업의 투자 수요도 크고 재무 안정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현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외부 자금 조달이 불필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필요한 것은 구체적 비교다. SK하이닉스는 1일 공식 입장문에서 내부 자금과 외부 자금 조달 방안을 비교하고 기존 주주의 경제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그 원칙이 실제 의사결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다.
상장 방식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하면 외부 투자자의 자금이 회사로 들어오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질 수 있다. 반면 기존 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구주매출이라면 매각 대금은 지분을 판 주주에게 돌아간다. 신주 발행 비중이 높아 지분율이 낮아졌다고 반드시 기존 주주의 경제적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조달한 자금이 충분한 기업가치를 만들어낸다면 지분율 하락을 상쇄할 수 있다. 다만 모회사와 자회사가 중복상장한 구조에서 자회사의 우수한 실적과 기업가치가 모회사 주주가치 상승으로 온전히 이어진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자회사의 성장이 모회사 주주에게도 같은 크기의 과실로 돌아간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발행 규모와 가격, 자금 사용처를 함께 따져야 한다.
금융당국의 최근 발언을 두고 상장에 제동을 걸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 규제에 저촉된다는 당국의 판단을 내놓고 SK하이닉스에 우려를 전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다만 해외 자회사 상장에 국내 규정을 어떻게 적용할지는 추가적 법률 검토가 필요한 쟁점이다.
하지만 논의의 출발점은 당국이 제동을 걸 수 있느냐는 데 있지 않다. SK그룹이 왜 상장을 추진하려는지, 다른 자금 조달 방안보다 무엇이 유리한지, 그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기존 주주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규제의 적법성을 따지는 일과 경영 판단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일은 별개다. 당국의 규제가 과도하다는 말에 일리가 있으려면 상장의 경제적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룹 전체의 전략적 필요가 개별 상장사의 주주 이익보다 앞설 가능성이다. SK그룹이 AI 사업 확장과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솔리다임 상장을 추진한다면 그 선택이 SK하이닉스에 어떤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지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그룹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설명만으로 모회사 주주에게도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 역할을 맡아야 할 곳이 이사회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상장이 구체화될 때 자금조달 방식별 재무적 효과와 지분 구조 변화, 투자 수익의 귀속을 비교하고 기존 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 판단을 주주가 일일이 대신할 수는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당성을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의 판단과 기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충돌할 때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이사회의 역할이다.
솔리다임 상장이 실제로 추진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능성이 높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장 여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그룹의 성장에 필요한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주주에게도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SK하이닉스가 주주가치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면 앞으로는 그 약속을 선언이 아닌 숫자로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