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약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일반의약품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약물 과다 복용’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감기약이나 수면유도제처럼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을 한번에 대량으로 복용하면 환각 등 부작용이 일어난다.
일반의약품 과다 복용의 부작용을 '놀이'로 즐기는 10대들. AI로 생성한 이미지.
21일 의약계 진단을 종합하면 최근 10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SNS를 통해 감기약 등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일반의약품은 과잉 복용하면 환각과 환청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이러한 증상을 일상에서 벗어나는 자극적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약물 과다 복용을 ‘놀이’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NS를 통해 약물 과다 복용 경험담을 공유하고 친구들과 함께 실행하는 이 같은 행위는 과잉 복용을 뜻하는 ‘오버도즈(Overdose)’에서 이름을 따 ‘OD 파티’ 또는 ‘환각 놀이’라고 불리고 있다.
학교 조퇴 수단으로까지 번진 ‘OD 파티’
“맨 처음에는 다섯 알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약이 센 거를 추천해 달라든지, 부작용 별로 없는 걸 추천해 달라든지...”
SBS의 19일 보도를 보면, 17세 A양은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SNS에서 ‘OD 파티’를 접했다. 처음에는 감기약이나 수면제를 5알가량 복용했지만, 현재는 한 번에 10~20알을 먹는 수준으로 늘었다. A양은 어지럼증과 환각, 환청, 구토 등 부작용을 겪고도 불안할 때면 약을 다시 찾는다고 밝혔다.
정서적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는 A양 같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엑스(X, 옛 트위터) 등에 공유된 각국의 ‘OD 파티’, ‘환각파티’와 관련 게시물을 보고 호기심에 친구들과 모여 이를 따라 하거나, 학교를 빠지기 위해 조퇴를 목적으로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약물 복용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로 소비되거나, 학교 혹은 학원을 빠지기 위한 ‘꼼수’로 알려지며 악용되는 셈이다.
실제 청소년의 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응급실 방문도 대폭 증가했다.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아 7월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약품 오남용으로 응급실을 찾은 만 19세 이하 청소년은 연평균 2570명에 달했다. 2021년 2320명이었던 환자 수는 지난해 2994명으로 늘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2025년 손상유형 및 원인 통계’에서도 젊은 층의 약물 오남용 중독 환자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중독 환자 가운데 20대가 18.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10대가 15.8%로 뒤를 이었다. 10, 20대 환자의 비중은 2015년 16.9%에서 지난해 33.9%로 10년 만에 2배로 뛰었다. 특히 10대 비중은 같은 기간 5.6%에서 15.8%로 약 3배 증가했다.
높은 접근성... 이상 구매 걸러내기 어려워
인천의 한 약국. ⓒ연합뉴스
일반의약품의 높은 접근성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법상 일반의약품은 구매 수량이나 연령에 별도 제한이 없고, 구매 이력도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전문의약품과 달리 약사의 복약지도 역시 의무가 아닌 재량 사항이다. 청소년이 마음만 먹으면 여러 약국을 돌며 약을 사 모을 수 있는 데다, 가정에 비치된 상비약까지 가져다 복용하는 경우에는 약국 차원의 대응만으로 오남용을 막기 어렵다.
그렇다고 일반의약품이라고 해서 과다 복용의 위험이 작은 것도 아니다. 수면제 ‘쿨드림’ 등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디펜히드라민은 과량 복용하면 환각과 심박수 이상, 경련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감기약 ‘콜대원’ 시리즈에 포함되는 덱스트로메토르판 역시 지나치게 많이 복용하면 환각이나 호흡 억제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논의도 진행 중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25일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일반의약품에 대한 약사의 복약지도를 의무화하고, 미성년자에게 적정 사용량을 초과해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9495)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구매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판매 기록을 5년간 보존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정부는 복약지도 의무화 등이 약국 현장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약물 과다 복용을 개인의 호기심이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소년들이 약물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교육하는 한편, SNS를 통해 확산하는 오남용 콘텐츠에 대응하고 약물 구매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