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적 다수'를 강조하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속 집권'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힘을 싣고 나섰다.
구조적 다수론은 민주진보 진영이 '구조적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연확장을 통해 '중도'와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외연확장이라는 명목 아래 정작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전통적 '코어 지지층'의 표심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 가운데 구조적 다수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을 배제한 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대통령과 김 대표의 구조적 다수론은 결국 민주당 내부의 '주류 세력 교체'를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21일 오전 유튜브 방송 '민티07'에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발언을 두고 "개혁하고 정권 바뀐 뒤에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역진한 경험도 많고, 민주 정부를 네 번째 운영하는데 정권 재창출에 매번 성공한 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대통령은 그 점(정권 재창출)에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고, 당 구성원 대부분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구조적 다수는 연속 집권과 정권 재창출에 있어 필수 과제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리끼리 뭉치면 결국 구조적 소수가 될 것이다"라며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포함해 창을 넓게 보자. 구조적 다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김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일각에서 외연확장을 통한 구조적 다수론을 강조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근거가 바로 이 대통령이 당선됐던 2025년 대선이다.
12·3 내란 직후에 열린 대선인데도 이 대통령은 49.4% 득표율에 그쳐 과반을 넘지 못했다. 보수진영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2%)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 득표율을 합치면 이 대통령 득표율을 넘어선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하는 점이 있다. 권영국 정의당 후보가 있었고, 그의 득표율(0.98%)를 합치면 민주진보진영 대선 후보 득표율은 50.2%로 보수진영 후보들 합보다 많다. 요컨대 2025년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은 국민 과반인 '구조적 다수'를 이뤘다.
윤석열씨가 당선됐던 2022년 제20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을 봐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47.83%)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 김재연 진보당 후보(0.11%)를 합치면 50.31%로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
이 대통령의 득표율이 곧바로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한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와 재판 등을 거치며 형성된 정치인 이재명 개인에 대한 '낙인'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대통령 관련 사건 수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중도층이나 보수층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었던 점이 득표율을 더 높이지 못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한국갤럽이 제21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25년 6월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결과 '사법 리스크·범죄 혐의'(30%), '신뢰 부족·거짓말·진실하지 않음'(18%), '도덕성 부족·사리사욕'(14%), '과거 언행·논란'(6%) 등을 꼽았다.
민주당은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는데 그 당시 선거캠페인도 특별하게 중도보수로의 외연확장을 추구한 게 아니라 '개혁'과 '정부견제론'을 내세워 승리를 거뒀다.
구조적 다수론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은 외연 확장이 '집토끼(핵심 지지층)'의 단단한 결속을 전제로 할 때 유효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집토끼가 이탈하지 않도록 신뢰를 준 상태에서 중도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 대통령과 김 대표, 뉴 이재명 세력이 보여준 정책 기조는 기존의 민주당 핵심 지지층 상당수에게 '배신감'과 '허탈함'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전통적 지지층의 심리는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대로 표출됐고, 집권 2년차 대통령의 강력한 후광을 입었음에도 김민석 대표는 '연임 도전'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선거를 뛰었던 정청래 전 대표를 상대로 '선호투표제'까지 가서야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최강욱 전 의원은 20일 유튜브 방송 '2분 뉴스'에 출연해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들의 상황을 두고 "많은 분들이 당혹스러워하고, 화를 내다가 요즘엔 지치신 것 같아 걱정된다"며 "감정적으로 훼손을 입어서 마음을 돌리게 되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민주당이 총선이나 대선에서 전통적 지지층이나 진보층의 결집 없이 승리를 거두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이나 김 대표가 강조하는 '구조적 다수론'은 결국 민주당 내부의 주류 세력 교체를 위한 레토릭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뉴 이재명 세력'의 대표 스피커인 이동형 작가는 최근 자신의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친문 지지층은 민주당을 떠나라"며 사실상 지지층 물갈이와 주류 세력 교체를 주장했다. 이 대통령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도 지난 7월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언급을 두고 "우리가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 포용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 '구조적 다수'라고 했다"며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 지속적, 체계적 다수라고 간다는 얘기는 민주당 지지층의 체질을 바꿔야 된다는 얘기로 들렸다"고 짚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이 대통령은 "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며 "한쪽의 대통령이 됐다가 배신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한쪽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통적 코어 지지층으로부터 나오는 '배신'이라는 비판에 반박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표를 받을 때에는 혁신과 개혁의 기치를 들고 전통적 지지층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호소해 놓고, 정권 출범 이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중도·보수 입맛에 맞춘 행보를 우선시한다면 전통적 지지층 관점에서는 '기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지지층의 표를 '따놓은 당상'으로 여기는 순간, 구조적 다수 구상은 지지층의 이탈이라는 균열로 맥없이 무너지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이날 채널A 정치시그널에서 "(김 대표가) 당 대표가 되고 나서 통합적 행보를 보이지 못했고 인사나 아니면 이제 정책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통합적 리더십을 못 보이고 있다"며 "오히려 당내 분열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재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을 볼 때 정부여당은 '구조적 다수'를 얘기할 게 아니라,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가 가능한지부터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길리서치가 이날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서 긍정평가는 32.1%, 부정평가 66.1%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두 배 이상 더 높았다. 긍정평가는 2주 전 조사보다 3.6%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원씨앤아이가 같은 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대통령 지지율은 37.2%에 그쳤고 부정평가가 61.2%였다.
한길리서치 여론조사는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9명에게 유·무선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조원씨앤아이 조사는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무선·ARS 방식으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9명에게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