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무실에 경쾌한 타건음이 울린다. 키보드와 모니터 아래에는 피규어들이 옹기종기 놓여있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꾸민 책상은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된다.
서울 성동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40대 직장인 성 모 씨는 자신에게 맞는 업무 환경을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데스크테리어(책상 꾸미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데스크테리어'는 책상(desk)와 실내장식(Interior)을 합친 말로 책상 위 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미는 것을 의미한다.
성 씨는 손에 맞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찾으며 작업 환경을 정비했다. 이후 시각적 만족을 위해 색상이 있는 키캡으로 교체하는 등 취향을 반영했다. 키캡은 키보드 각 키 위에 씌우는 덮개로 색상과 형태에 따라 키보드의 외관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성 씨는 "자신이 편안하게 일하면서도 외부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안식처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등받이 쿠션과 버티컬 마우스처럼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제품부터 캐릭터 소품과 말랑이 같은 장난감까지, 직장인들이 책상 위에 실용성과 취향을 함께 채워 넣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에서 제3회 서울 기계식 키보드 박람회가 열렸다. 사전예약은2월27일 정오부터 시작돼 28일 전 일정 전석이 매진되었다. 박람회 운영 사무국은 올해는 관람객 안전과 원활한 운영을 위해 현장판매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박람회에 다녀온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현장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키보드를 보고 타건해볼 수 있었다"고 말하며 기계식 키보드의 인기를 전했다.
데스크테리어가 직장인들에게 의미를 갖는 배경에는 업무 공간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OECD) 회원국 38곳 가운데 연간 노동시간이 여섯 번째로 긴 국가다. 지난해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833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36시간보다 97시간 많았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환경은 회사의 운영방식과 조직문화에 맞춰 조성되는 만큼 개인이 원하는 대로 환경을 바꾸기 어렵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책상 위 소품은 개인이 직접 선택해 정해진 업무 공간에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으로 꼽힌다.
자신만의 취향을 담은 책상을 꾸미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도 한다. 제3회 서울 기계식 키보드 박람회의 한 부스에서는 키캡 뽑기(가챠) 상품이 30% 할인 적용 후에도 4만 원대부터 판매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기계식 키보드는 대략 3만 원대부터 시작하지만 40만 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무선 기능과 소재, 스위치, 브랜드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큰 만큼 데스크테리어에 드는 비용도 달라질 수 있다.
직장인들이 책상을 꾸미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업무에 적합한 도구를 찾아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과 소품으로 심리적 안정과 시각적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나아가 책상은 조직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송씨는 책상을 업무 공간이자 휴식과 식사를 하는 공간, 동료를 맞이하는 응접실로 활용한다. 송씨는 책상 꾸미기를 "나를 드러내는 몇 안 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다닐 때 친구의 사물함을 보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듯 직장에서도 책상을 통해 동료의 성향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송씨는 데스크테리어가 "자신이 어떤 분위기로 살고 싶은지 전달하기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송씨의 직장 동료인 30대 이 모씨는 "내가 언제든지 대체될 만한 느낌이 드는 것은 별로"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데스크테리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과 맞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