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이 올해 들어 조선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2조 원가량을 확보하고 실적 부담 요인을 없애면서 양기원 한화시스템 대표이사 체제에서 성장동력을 마련할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양 대표는 ‘신규 사업모델 전문가’라는 평가답게 중동 방산 시장과 우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양기원 한화시스템 대표이사(왼쪽)가 조선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얻은 2조 원 규모의 자금 등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은 양 대표가 하마드 알 마라르 에지그룹 최고경영자(CEO)와 15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에지그룹 본사에서 통합대공망 구축사업에 관한 주요조건합의서를 체결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한화시스템
22일 신용평가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한화시스템이 한화필리조선소 지분을 모두 처분하며 수익성 개선과 재원 확보 두 측면에서 효과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시스템에 따르면 100% 자회사 HSUSA홀딩스는 10월31일자로 한화필리조선소 지분 60%를 한화디펜스USA로 매각한다. 매각금액은 모두 3251억 원 규모다.
양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한화필리조선소에서 나오던 한화시스템의 실적 부담 요인을 없앨 수 있게 된다. 양 대표는 7월30일 한화그룹 인사에서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로 내정됐고 9월18일 임시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거쳐 공식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한화오션과 함께 한화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지분율은 각각 한화시스템이 60%, 한화오션이 40%로 이때부터 한화시스템은 한화필리조선소를 연결대상에 편입했다.
다만 한화필리조선소는 한화그룹 편입 이전에 수주했던 저수익 선박 영향과 생산성 개선 과정 등이 겹치면서 지금까지 손실이 지속하고 있다. 이는 한화시스템 수익성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1199억 원을 기록했다. 2024년보다 45.3% 급감하면서 3년 만에 영업이익이 감소했는데 이는 한화필리조선소의 실적 부진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한화시스템 부문별 영업이익을 2024년과 비교해보면 방산 부문은 개선됐고 ICT 부문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한화필리조선소 영향 탓에 같은 기간 기타 부문 및 연결조정 부문에서 영업손실이 58억 원에서 1601억 원으로 급증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한화시스템의 영업이익이 후퇴하게 된 것이다.
또 양 대표는 한화필리조선소가 모두 50억 달러(약 7조 원)에 이르는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대주주로서 한화시스템의 투자 부담도 덜어낼 수 있게 됐다.
한화시스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올해 한화필리조선소 투자금으로 5409억 원을 배정했고 상반기까지 436억 원을 집행했다. 한화필리조선소 지분 매각은 한화시스템으로서는 3천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실적·투자 부담까지 줄이는 방안인 셈이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1일 ‘한화시스템의 한화필리조선소 지분 매각에 관한 한신평의 의견’ 보고서에서 “한화필리조선소가 한화시스템의 연결대상에서 제외되면 한화시스템의 연결기준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며 “또 향후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접적 재무부담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양 대표는 앞서 진행된 포트폴리오 조정과 더해 모두 2조 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4월 한화오션 지분 4.5%를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처분해 1조7천억 원을 마련했다.
한화시스템은 한화오션 지분 매각 목적을 ‘유동성 및 전략적 투자재원 확보’라고 설명했고 이번 한화필리조선소 지분 매각을 놓고는 ‘신사업 전략 추진을 위한 유동성 확보’라고 못 박았다.
양 대표에게 적지 않은 재원이 주어졌고 여러 부담도 덜어진 만큼 사업·전략기획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어깨의 짐도 무거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대표가 먼저 바라보고 있는 시장은 방산 분야에서 중동 지역이다.
한화시스템은 15일(현지시각) 에지그룹과 아랍에미리트(UAE) 통합대공망 구축사업에 관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현지 합작법인 설립을 포함해 UAE 통합대공망 구축을 위해 중장기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한화시스템과 에지그룹 사이 협력의 의미는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 파트너십이 제대로 작동하는 일은 양 대표의 큰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시스템은 한국과 UAE 사이 방산협력의 선봉에 서면서 중동 지역에서 사업확장의 기회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협력은 올해 2월 한국과 UAE가 35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의 방산협력을 약속한 뒤 미국과 이란 사이 전쟁 등으로 정체됐던 국면에서 나온 첫 실질적 움직임이다. 또 한화시스템이 단발성 수출을 넘어 UAE의 방위산업 전반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게다가 에지그룹의 영향력을 중동 지역 전반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백종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8일 방위산업 보고서에서 “에지그룹은 UAE 정부가 35개 이상의 국영·민간 방산 및 기술기업들을 하나로 모아 출범시킨 대형 방산 연합체”라며 “중동·아프리카(MENA) 지역 내 정치·외교적 영향력과 영업망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시스템은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천궁, M-SAM)을 넘어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한국형 사드, L-SAM) 시스템을 현지에 도입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에지그룹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화시스템과 맺은 계약 조건서에는 M-SAM, L-SAM, 다연장로켓 천무의 시스템을 활용해 통합 방공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한화시스템은 M-SAM과 L-SAM 등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을 위한 대공방어체계의 핵심 센서인 다기능레이다(MFR)를 개발·공급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UAE에 11억 달러(약 1조3천억 원)의 M-SAM-II MFR을 수출하기도 했다.
양 대표가 한화시스템의 장기 프로젝트 차원에서 기반을 닦아야 하는 분야로는 우주 사업도 꼽힌다.
한화그룹은 독자 발사체와 위성 기술을 기반으로 통합 우주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우주에서 정보를 수집하면 인공지능(AI)이 이를 분석해 우리 군의 판단과 작전수행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화시스템은 초저궤도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우주 AI 데이터센터, 위성통신망 등을 확보하는 데 2040년까지 모두 20조 원을 들인다. 15년에 이르는 장기 계획이지만 연간 평균 1조 원 이상이 필요한 만큼 사업 초기 안정적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
한화시스템은 그룹 차원의 대규모 장기투자 계획이 발표된 뒤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여러 위성들이 지상국으로 전송하는 영상 데이터를 AI를 이용해 정밀 분석하고 핵심 정보를 요약해 제공하는 ‘우주 AI 솔루션’을 공개하는 등 우주 사업과 관련한 기술을 잇따라 선보이며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이사회는 양 대표를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다양한 부문에서 신규사업 모델을 발굴하고 성과를 창출해 왔다”며 “특히 민수분야 및 글로벌 사업 경험이 풍부해 한화시스템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와 우주 항공 신기술 등의 미래 성장동력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으로 판단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