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법원과 청와대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거부 이유로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헌법에 위배된다며 공개 비판했다. 대법관 재제청을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물러설 조짐이 없는 만큼 대법관 공백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청와대는 22일 언론공지를 통해 "대통령의 제청 반려에도 불구하고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하지 않겠다는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어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하여야 한다는 것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 출근길에서 취재진을 만나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청을 수용할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청와대가 지난 8얼28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한 지 25일 만이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며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로는 8월 28일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 명의 대법관 후보자를 둘러싼 인사 갈등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는 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압축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를 제청하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사전 협의를 거치는 것이 사실상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보자 선정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합의 없이 손 후보자를 제청했다. 청와대가 이를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기존의 인선 관행 자체가 충돌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과 조 대법원장의 행태가 맞물리면서 단순한 법리 다툼을 넘어 대통령과 사법부 사이의 힘겨루기로 바라보는 시각도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의겸 의원(맨 왼쪽부터), 서영교 국회법사위원장, 김기표 민주당 의원,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대통령 출국 직후 기습발표는 대법원장의 정치적 행위이자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다"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는 윤석열의 12·3 쿠데타에 이은 사법쿠데타이자 사법농단이다"라고 주장했다.
범여권 법사위원들은 조 대법원장의 이중적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 대법원장이 먼저 형식적 제청 절차를 어겼으면서 형식 논리를 앞세워 대통령의 적법한 재제청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 대법원장은 지난 1월 추천위 추천 이후 200일이 넘도록 제청을 지연하다가, 대통령과 실질적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서면으로만 제청했다"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할 문제를 법원행정처가 스스로 훼손한 뒤 이제 와서 형식논리를 앞세운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진상을 소상히 규명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대법관 재제청에 선을 그은 만큼 청와대나 여권이 계속 재제청을 압박하는 방법으로는 교착상태를 풀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 시사정각에서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대법원 판사를 추천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의 대안이 있어야 되는데 대안이 없다"며 "대법관 궐석 상태를 지속하겠다는 정치적 투쟁 선언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해법 없이 갈등의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