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성길 풍경은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1960~70년대에는 서울역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1970~80년대에는 고속버스터미널에 인파가 가득했다. 1990년대부터는 고속도로를 빼곡히 채운 차량 행렬이 명절의 익숙한 장면이 됐다.
이후 부모가 자녀를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역귀성'이 또 다른 명절 풍경으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고향 대신 국내외 여행지로 향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추석을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른 귀성을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올해도 3천만 명이 넘는 '민족대이동'이 예고됐다. 국토교통부는 23~27일 특별교통대책 기간 총 3093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귀성길은 24일 오전 가장 혼잡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천만 명이 움직이는 '민족대이동'이지만 6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올해 국내 이동수단의 88.4%는 승용차이고, 철도는 5.9%, 버스는 4.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대규모 귀성 행렬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명절이면 다시 지방으로 향했고, 귀성객은 서울역으로 몰렸다.
1960년대 추석을 앞두고 귀성객들로 가득 찬 열차 내부. ⓒ국가기록원
1969년 9월 당시 기록을 보면 정원 87명인 3등 객차에 230여 명이 올라타고 객실 위 짐 선반에까지 사람이 올라가 눕는 장면이 흔했다. 기차표 한 장을 구하는 것부터 열차에 몸을 싣는 것까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귀성객의 이동 경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에는 열차와 함께 고속버스가 주요 귀성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기업과 관공서가 직원들의 고향 방문을 위해 단체 귀성버스를 마련하는 모습도 흔했다. 서울역에 집중됐던 명절 인파가 고속버스터미널과 도로 곳곳으로 퍼져나간 셈이다.
1980년대 후반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귀성 행렬의 중심은 고속도로로 옮겨갔다. 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늘어난 데다 1989년부터 추석 연휴가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가족 단위 자가용 귀성이 급증했다.
1990년대 추석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 모습. ⓒ유튜브 채널 옛날티비 : KBS Archive
1990년대에는 명절만 되면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주요 도로가 차량으로 뒤덮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이 걸렸느냐'가 명절 단골 화제가 됐다. 서울역의 만원 열차 대신 꽉 막힌 톨게이트와 휴게소가 추석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이동수단뿐 아니라 고향에 머무는 시간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한국교통연구원이 국민 1만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행실태조사를 보면 가장 많은 13.0%가 추석 전날인 24일 귀성해 26일 돌아오겠다고 답했다. 추석 당일인 25일 내려갔다가 당일 돌아오겠다는 응답도 11.2%였고, 24일 내려가 추석 당일 돌아오는 일정은 10.2%였다. 며칠씩 고향집에 머무르기보다 하루나 이틀 안에 명절 일정을 마치는 귀성이 주요 형태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귀성의 방향도 더 이상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올해 귀성·역귀성 목적지를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이 32.1%로 가장 높았고 경상권 30.5%, 전라권 16.4%, 충청권 15.2%가 뒤를 이었다. 특히 수도권 비중은 지난해 26.9%에서 올해 32.1%로 5.2%포인트 높아졌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22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승강장에서 한 어르신이 역귀성을 위해 열차 번호가 적힌 메모를 들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명절 이동을 '수도권에 사는 자녀가 지방의 부모를 찾아가는 것'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코레일도 올해 부모 등 가족을 수도권으로 초대하는 수요를 겨냥해 '역귀성' 열차 잔여석을 최대 50%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역귀성'만으로도 달라진 추석 풍경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가족이 있는 집을 찾아가는 대신 아예 여행지에서 명절을 보내는 선택지도 생겨났다. 이제는 귀성이나 역귀성의 틀 자체를 벗어난 이동이 넓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나투어가 지난달 20일 기준 23~27일 출발 기획여행 상품 예약을 집계한 결과 중국·일본·동남아 등 근거리 지역의 비중은 전체의 약 88%였다. 트립닷컴 그룹이 집계한 예약에서도 일본 오사카·후쿠오카·도쿄가 해외 여행지 상위 3곳에 올랐고, 베트남 다낭·나트랑과 중국 상하이가 뒤를 이었다.
특히 연휴 첫날인 24일보다 하루 앞선 23일 출발 예약이 약 5% 많았다. 과거에는 추석을 앞두고 고향행 열차표를 구했다면, 이제는 연차를 하루 붙여 해외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도 늘고 있다.
22일 전남광주 북구 북구청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추석을 맞아 송편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명절 의례 역시 달라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소비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고 답한 가구는 27.3%로 지난해 40.4%보다 13.1%포인트 줄었다. 차례를 지내는 가구 가운데서도 50.9%는 '전통 예법에 맞춘 간소화'를 택했다.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차례상을 차리는 명절의 모습도 예전만큼 당연한 풍경은 아니게 된 것이다.
올해 추석도 3천만 명 넘는 사람이 움직이고 귀성길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대 10시간3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대에는 서울역에서 열차 선반까지 자리를 내주며 고향으로 내려갔고, 이후에는 고속버스와 자가용으로 갈아탔다.
부모가 자녀를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역귀성이 자리 잡은 데 이어 이제는 당일치기로 고향을 다녀오거나 국내외 여행지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이동하는 사람의 규모는 여전히 크지만, 누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생활 양식의 변화에 따라 60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