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유가 안정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내세우는 명분은 민생 안정이다.
그러나 주유소들은 정부의 정책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한다. 주유소 점주의 생계는 민생에 포함되지 않는 듯하다.
여기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불합리한 방식으로 석유를 공급하고 담합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와 정유사 사이에 낀 주유소만 고통받는 형국이다.
정부와 정유사가 석유 가격을 쥐고 흔들면서 주유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가 폐업을 하고 영업을 중단한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18일 민생 안정 등을 목적으로 추석 연휴 기간(24~27일)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 유류가격을 리터당 100원 인하하기로 했다. 인하 적용 대상은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재정 고속도로 주유소 226곳이다. 정부는 고유가 부담을 공공이 함께 분담하고자 이번 인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주유소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인하가 발표된 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 부담 완화를 명분으로 특정 주유소에만 가격 인하 혜택을 집중하면 정상적 가격 경쟁이 왜곡되고 그 피해는 일반 자영주유소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일반 주유소는 사실상 추석에 문을 닫으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자영주유소는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유소로 전체 주유소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석유유통협회 역시 21일 입장문에서 "민간 시장을 교란하고 자영주유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관제 선심성 특혜 행정"이라며 "이번 인하는 일반 자영주유소 고객을 빼앗는 불공정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3월부터 운영해 온 석유 최고가격제 또한 주유소에 부담이 되고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 대리점에 공급하는 석유 도매 가격에 상한을 두는 제도다. 주유소의 소매 가격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도매가에만 천장이 생기니 언뜻 주유소에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부는 행정 압박으로 소매가에도 사실상 상한을 걸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3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판매가격을 인상했던 한 주유소를 불시 방문했다. 그러고는 대동한 '범부처 합동점검단'을 통해 정량 미달 판매, 조세 포탈, 유가보조금 부정수급 여부 등을 확인했다. 주유소의 매입·매출 장부를 확인하고, 폐쇄 회로 텔레비전(CCTV)까지 뒤졌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정유사의 공급 가격이 인하된 만큼, 주유소 가격도 내려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주유소도 석유 최고가격제에 발을 맞추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에 한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최근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최고가격제 시행 과정에서 주유소의 유통 마진이 크게 축소됐다"며 "최소한의 이익도 확보하지 못해 영업을 중단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석유유통협회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기 전인 2월 말 전국 영업 주유소는 1만413곳이었다. 그러나 8월 말에는 164곳 감소한 1만249곳을 기록했다. 거의 매일 한 곳씩 문을 닫은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정유사도 주유소를 흔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7월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을 담합하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담합으로 결정된 가격을 그대로 추종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천억 원이었으며,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담합 가격을 참고해 인상한 것까지 감안하면 경쟁 제한 효과는 총 26조 원 규모였다.
검찰은 이런 담합의 이면에 자영주유소가 정유사에 종속되는 불합리한 유통구조가 자리한다고 봤다.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가격으로 자영주유소에 석유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전량구매' 방식이 담합을 한층 용이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유사들은 전량구매 의무를 위반한 주유소의 기존 혜택을 박탈하고 거액의 위약금 소송을 제기하며 종속을 강화했다고 알려졌다.
정유사가 그동안 주유소에 석유 제품을 제대로 된 가격에 공급해왔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