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국내 개봉과 동시에 흥행 돌풍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화를 둘러싼 온갖 화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영화를 두고 '반전(反戰) 영화', 나아가 '반(反)트럼프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이란 전쟁으로 죽거나 부상 당한 병사들과 함께 영화 '오디세이'를 관람하고 있다. AI 이미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5일 수요일 국내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작품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아'를 각색한 영화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전쟁 이후 거대한 폭풍과 괴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시련을 겪으며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러나 현재 관객들은 이 작품을 단순한 신화 영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평론가와 관객들은 영화가 현대의 전쟁과 정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미디어오늘 라디오 프로그램 '과몰입클럽'에서는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자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의 반전 영화"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떠오른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이 작품을 반전 메시지를 품은 영화로 해석했으며,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사실상 반트럼프 영화'라는 반응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팟캐스트 '과몰입클럽' 방송 캡쳐. ⓒ유튜브 '미디어오늘'
※ 아래 글 내용은 영화 '오디세이'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의 비극을 꼬집는 신화 이야기
이 같은 해석이 나오는 배경에는 영화가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개봉 전부터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흑인 배우 루피타 뇽오가가 헬레네를 연기하는 점을 문제 삼았고 시대와 맞지 않는 현대적 대사, 동양인 병사와 역사적 고증과 다른 갑옷 등을 짚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단순한 고증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인 장치처럼 활용한다. 이야기를 과거 신화 속에 가둬두는 대신, 현대 사회와 맞닿은 이야기로 끌어오기 위한 연출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언급한 표면적인 고증의 오류를 뒤로하고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각색된 부분은 바로 트로이 목마가 영화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이다. 전통적으로 트로이 목마는 오디세우스의 가장 위대한 전략이자 승리를 이끈 기지로 묘사돼 왔다. 그러나 놀란의 영화는 이를 화해의 선물로 위장한 대규모 기만과 학살의 상징으로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 역시 자신이 고안한 트로이 목마 전략을 영웅적 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선택에 깊은 죄책감과 괴로움을 느끼며, 이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과오에 대한 대가이자 마땅한 벌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끝내 전쟁을 벗어나지 못한 병사의 모습, 전통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참전 군인을 연상시키는 인물로 그려지는 셈이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는 인간의 윤리를 저버린 비인간적인 전략으로 그려진다. ⓒ유니버설 픽처스
결국 원전의 신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거대한 스케일과 아름다운 영상미, 음악,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뿐이다. 영화가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전쟁 속에는 위대한 영웅도, 찬란한 승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은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정신과 삶을 철저히 파괴한다. 작품은 화려한 전투와 영웅적 서사 뒤에 숨겨진 상처와 비극을 통해, 전쟁이 결국 모든 이에게 깊은 상흔을 남기는 비극임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제는 원작에 비해 전쟁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훨씬 강하게 부각한 점 때문에, 미국 일부 우파 평론가들은 '고전적 영웅상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놀란 감독이 이를 어디까지 의도했는지와는 별개로 관객들은 '오디세이'를 통해 오늘날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와 존엄을 외면한 채 자행되는 전쟁의 비극과 부조리를 읽어내고 있다.
정치적 진영과 국경을 넘어, 관객들이 '오디세이'를 관람한 뒤 현재 국제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에 호불호를 넘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엇갈릴 수 있지만, '오디세이'에서 제시한 전쟁의 비극과 참상이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영화 감독 봉준호는 '오디세이'를 감상 후 "위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새로운, 당대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라며 "놀란 감독은 이 일을 탁월하게 해냈다"고 평가했다.
왜 '오디세이'를 보고 사람들은 트럼프를 찾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거듭하며 미국의 군사 개입 자제를 강조했다. 그는 2021년 고별 연설에서도 자신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탐사 저널리즘국'에 따르면, 트럼프 집권 첫 2년 동안 미국의 드론 공격은 2243차례로 집계됐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 동안 발생한 1878건보다 많은 수치다.
미 국방부 국방사상자분석시스템(DCAS)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1기 재임 기간 적대적 행위로 숨진 미군은 약 65명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45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의 후유증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보훈부 연구에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참전용사의 15.7%가 PTSD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2기 들어서는 중동 정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미 국방부 집계를 보면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올해 2월28일부터 7월26일까지 미군 피해는 사망 18명, 부상 624명에 이르렀다. 국방부가 사망자 수를 한때 18명에서 14명으로 수정했다가 다시 18명으로 복원하는 등 집계 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란 국민의 피해 규모는 미군 피해보다 훨씬 컸다. 이란 보건당국은 전쟁 발발 이후 6월까지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3468명이 사망하고 2만6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친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