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Generation Z, Gen Z, 젠지)는 섹스를 멀리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한때 더 많은 경험과 자유로운 성생활이 개인의 해방으로 여겨졌다면, 이제 Z세대(1997년~2012년)에게 섹스를 하지 않는 선택은 자신을 지키고 삶의 균형을 찾는 하나의 방식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Z세대와 사랑, AI 이미지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섹스 불황(sex recession)’이라는 이름까지 붙는 젊은 세대의 변화를 조명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문화 담당 편집자 나디아 스피겔먼은 저널리스트 카터 셔먼, 연구자 크리스틴 엠바와 함께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미투 운동, 정치적 갈등이 Z세대의 성과 연애관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짚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종합사회조사(GSS) 데이터와 이를 분석한 미국 가족학연구소(IFS)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주 1회 이상 성관계를 하는 비율은 1990년 55%에서 2024년 37%로 떨어졌다. 특히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 층에서 "지난 1년간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은 2010년 12%에서 2024년 24%로 두 배 증가했다.
Z세대가 성관계를 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달라진 연애 문화부터 경제적 현실, 관계에 대한 가치관 변화까지 여러 요소가 얽혀 있다.
“데이트보다 스마트폰”, 관계를 대체한 기술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고속 인터넷 환경을 접한 세대다. 손안의 화면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인공지능(AI) 챗봇과 대화하고, 틱톡과 유튜브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온라인에서 성적 욕구까지 해소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쌓는 대신 집에서 화면을 넘기는 선택이 더 쉽고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기술은 연결을 확대했지만, 역설적으로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를 건너뛸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
SNS가 만든 ‘완벽한 연애’와 거절의 시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연애의 기준도 높였다. 데이트 장소, 기념일, 여행 등 관계와 소통의 순간들이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젊은이들이 ‘완벽한 연애’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데이트 앱 역시 관계 형성 방식을 바꿨다. 과거에는 몇 번의 거절을 경험했다면, 지금은 데이트 앱에서 수십 번의 거절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다. 외모와 조건이 빠르게 평가되는 환경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선택을 한다.
미투 이후 변화한 연애의 기준
미투 운동은 성적 관계에서 동의와 경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젊은 여성들은 과거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성적 관계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관계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신중함이 커졌다. 일부 젊은이들은 외모와 경제적 기준, 상대에게 요구되는 기대치를 부담스럽게 느끼며 관계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를 먼저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섹스보다 정신 건강? 달라진 우선순위
Z세대는 정신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세대다. 이전 세대보다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상담과 치료를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강하다. 이들에게 연애와 성관계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져올 수 있는 관계다.
교육플랫폼 에듀버디(EduBirdie)가 2025년 Z세대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는 만족스러운 성생활보다 충분한 수면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안정적인 직장(64%), 개인적 성공(59%), 건강한 우정(50%)도 성생활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다. 이는 성이 더 이상 삶의 최우선 가치가 아니라는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를 금욕주의나 보수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전 세대의 성문화를 지켜본 뒤 다른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밀레니얼 세대의 성적 긍정주의가 성을 자유와 해방의 상징으로 봤다면, Z세대 일부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에도 주목한다. 포르노가 성관계의 기준을 왜곡하거나 불편한 성적 행동을 정상화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벼운 관계보다 신뢰와 안정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혼자는 괜찮지만, 연결은 여전히 필요하다
Z세대 사이에서는 혼자 사는 삶을 긍정하는 문화도 커졌다. 혼자 요리하고,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공간을 즐기는 모습이 온라인 콘텐츠가 된다. 역설적으로 Z세대의 혼자는 완전한 단절이나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접 만나 관계를 쌓는 방식은 줄었지만 화면 너머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며 새로운 형태의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원하지 않는 고립이지만,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다. Z세대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성관계 감소 뒤에는 정치적 양극화도 있다
성과 연애는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Z세대에서는 남녀 간 정치적 가치관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젊은 남성이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젊은 여성은 진보적 성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결혼과 가족, 성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도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우파가 결혼 전 순결과 금욕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연결되고, 좌파는 성에 대해 더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파는 전통적 가족 가치와 출산을 강조하며 더 많은 성관계와 결혼을 장려하는 반면, 일부 좌파 진영에서는 결혼과 출산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무성애나 비혼주의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섹스 불황은 미국 Z세대가 사랑과 친밀감, 관계의 의미를 다시 묻는 과정이다. Z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선택 역시 그중 하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