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암 인에서 네오나치들의 ‘순례지’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서로 전환된 아돌프 히틀러 생가 건물 앞에 경찰관들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스트리아 정부는 히틀러의 생가가 더 이상 극우주의자들의 ‘성지 순례’ 장소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물을 공공 공간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일으킨 나치 정권의 지도자를 배출했다는 역사적 책임 논란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극우 세력의 부상 속에서 오스트리아가 내놓은 답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4월2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현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 암 인에 있는 한 임대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수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2017년 건물을 확보했고, 2019년 경찰 시설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뒤 약 7년에 걸친 논의와 재설계를 거쳐 2026년 7월 22일(현지시각) 경찰서로 공식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는 약 2000만 유로(약 300억 원)가 투입됐다.
7월22일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암 인. 네오나치들의 ‘순례지’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가 경찰서로 전환한 아돌프 히틀러 생가 건물 앞에 기념석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히틀러 생가 앞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아니라 나치 범죄를 기억하고 파시즘의 재발을 경고하는 반파시즘 기념석이 놓여 있다. 석재에는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하여. 다시는 파시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수백만 명의 희생자가 경고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기념석은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나치는 이곳의 화강암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고, ‘죽음의 계단’이라 불린 186개의 계단을 오르내렸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히틀러가 태어난 장소에 나치 희생을 상징하는 기념물을 세운 것은 이곳을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숭배 장소가 아닌 나치의 역사적 책임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남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6년 7월16일 촬영된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암 인에 위치한 아돌프 히틀러 생가 내부 계단. 1889년 히틀러가 태어난 이 건물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결정에 따라 경찰서로 전환됐다. ⓒAFP/연합뉴스
한편 히틀러가 생애 첫 몇 주를 보낸 이 건물은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학살·재난 등 비극의 현장을 찾아 역사적 교훈을 얻으려는 여행을 뜻한다. 하지만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둔 장소가 때로는 극단주의자들의 숭배 대상으로 악용될 위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다.
그동안 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여러 논의가 이어졌다. 박물관으로 만들어 나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경찰서였다. 경찰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히틀러를 기리는 공간이 될 수 있는 박물관이나 기념관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곳에서 나치 상징물 전시 등 오스트리아 법으로 금지된 행위를 막는 역할도 맡게 된다.
과거의 흔적을 다루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길을 택했다. 지배의 상징을 제거함으로써 역사적 공간을 되찾는 방식이었다. 또한 숱한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잃은 서울 서대문형무소는 역사관으로 후세들에게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7월22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암 인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를 개조한 경찰서 내부 유치실을 취재진이 촬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오스트리아는 히틀러의 생가를 남겼다. 하지만 그대로 보존한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가진 의미를 바꿨다. 나치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장소를 나치즘을 경계하는 장소로 전환했다.
어떤 방식이 더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건물을 남겼는지, 없앴는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사회가 끔찍한 과거를 어떻게 마주하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역사는 건물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건물이 남아 있다고 해서 과거가 반복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아닐까.
히틀러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증오의 언어와 극단주의는 여전히 모습을 바꿔 등장한다.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현재를 지키기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137년 전 히틀러가 태어난 공간에는 이제 경찰의 발걸음과 무전 소리가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