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제일고 총동창회가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으로 논란이 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 대해 선처를 요청했다.
홍경표 광주일고 총동창회장(가운데)이 7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서 배재고 학생들의 선처를 바라는 광주서중ㆍ일고 총동창회의 호소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잘못에는 분명한 책임을 묻되, 진심으로 반성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성장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비판과 처벌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육의 본질인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강조한 '참어른다운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7일 오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에서 "피해 당사자로서 깊은 고심 끝에 화해와 포용의 뜻을 담아 의견을 모았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자리에는 홍경표 광주제일고 총동창회장과 이규연 교장, 조윤채 야구부 감독 등이 참석했다.
총동창회는 먼저 이번 사건으로 동문과 재학생들이 받은 충격과 상처가 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화를 근절하고, 사태를 방조하거나 관여한 지도자와 학교, 교육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이 가진 무게를 깨닫고 재발 방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기념일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혐오 행위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일고와의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 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서울 배제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왼쪽)가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총동창회는 처벌과 응징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총동창회는 "가해 학생들을 향한 증오나 보복의 감정이 우리 마음속 깊은 어두운 구석에서도 자라나지 않기를 원한다"며 "교육의 참된 의미와 스포츠맨십의 본질을 되살려, 이들을 넓은 관용으로 품어 안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서중·일고 동창회의 궁극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목표는 '어린 학생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올바른 교육과 정의의 회복'"이라며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학생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은 우리가 바라는 길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동창회는 이번 사건이 배재고 학생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의 뼈아픈 실수가 배재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인생의 나침반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며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생산하고 부추긴 혐오 문화를 훗날 이 학생들이 앞장서서 뿌리 뽑아 주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이어 배재고를 향해서도 "이번 사태를 뼈를 깎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 그 명예를 회복하고 품격을 더욱 단단히 다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재학생들에게도 성숙한 대응을 당부했다. 총동창회는 "사과를 받고 화해의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상처 입은 우리가 먼저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관용의 손길을 내밀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갈등과 분열로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에 의연하고 성숙한 '바른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이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의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가르침을 언급하며, 용서와 관용 역시 광주 정신의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총동창회는 시민들에게도 "사사로이 단죄의 칼날을 휘두르거나, 반대로 혐오를 옹호하고 증폭시키는 행위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 비극적 사건에 억지스러운 정치적 의미를 덧씌우고 편을 가르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사회를 혼란시키는 시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마지막으로 "우리 일고인과 배재고가 맞잡은 화해의 충심을 믿어달라"며 "뜨거운 가슴으로 격려하되, 차가운 이성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6일에는 배재고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총동창회가 광주제일고를 찾아 공식 사과했다. 배재고 측은 학생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학교와 광주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교장은 이날 배재고 학생과 감독, 교장의 사과를 받은 뒤 배재고 학생들에게 다시 일어설 것을 당부했다.
이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라. 어깨 펴고,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더 잘 살기 위해서 어깨 움츠리지 말고 고개 들고 그리고 다음에 저희 일고 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서로 있는 기량 마음껏 펼치면서 멋진 승부 펼쳐주는 것이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이 사과 방문한 서울 배제고등학교 야구부에게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해와 피해가 뒤바뀌지 않도록 책임을 묻는 동시에, 반성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광주제일고의 대응은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배재고 야구부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받은 6개월 출전 정지 징계에 대한 재심 신청 기한은 8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