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명품과 화장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쇼핑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K푸드를 해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체험형 플랫폼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올해 인천공항 1·2터미널점 식품존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에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프리미엄 김치 브랜드 ‘조선호텔 김치’를 새롭게 선보였다. ⓒ신세계면세점
이런 변화는 면세업계의 사업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화장품과 패션을 구매하는 채널은 면세점뿐 아니라 올리브영, 백화점,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 다양해졌다. 면세점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가 약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루이뷔통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하는 등 주요 럭셔리 브랜드들도 잇달아 면세 채널을 축소하거나 판매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 고환율과 글로벌 브랜드의 가격 정책으로 면세가격과 국내 판매가격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면세가 가장 싸다'는 공식도 희미해졌다. 일부 제품은 백화점 가격과 차이가 크지 않거나 오히려 더 비싸게 판매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소비 행태 역시 달라졌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회복되고 있지만 1인당 구매액(객단가)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 대량 구매를 이끌던 '따이공(중국 보따리상)' 수요가 감소한 데다 명품 중심 소비도 약화되면서 면세점은 단순 판매만으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국내 면세점 연간 매출도 2025년 12조5천억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4조9천억 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명품 중심 사업 모델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면세업계는 '쇼핑'보다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 중심에는 K푸드가 있다.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 여행의 경험과 연결하기 쉬운 만큼 외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한국을 알리 수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면세점 업계의 전략도 K푸드에 집중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식품존에 조선호텔 김치와 전통 디저트 등 K푸드 상품군을 확대했다. 농심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배홍동막국수'를 제공하며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K푸드 체험 마케팅에 나섰다.
롯데면세점도 BTS와 협업한 팔도·hy의 K푸드 브랜드 '아리(ARIH)'를 업계 단독으로 선보인 데 이어, 정관장과 업무협약을 맺고 면세점 전용 상품을 공동 기획하는 등 K푸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해공항점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부산초콜릿'을 단독 출시하는 등 지역색을 담은 식품으로 차별화에도 나서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올해 1~5월 K푸드 카테고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48% 증가했고, 외국인 대상 K푸드 매출은 같은 기간 70% 늘었다. K푸드가 더 이상 명품 쇼핑의 보조 상품이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콘텐츠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면세점의 경쟁력은 '얼마나 싸게 파느냐'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명품 중심 쇼핑 공간이었던 면세점은 이제 K푸드를 가장 먼저 맛보고 경험하는 공간이자, 한국 식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