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부사장이 한국과 일본 롯데의 싱가포르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며 그룹 핵심 사업 전면에 섰다. 미래성장실과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이어 식품사업까지 책임 범위가 확대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제 새로운 직함이 아니라 실제 경영 성과를 궁금해하고 있다. 맡아야 할 사업이 늘어날수록 후계자로서 증명해야 할 경영 성과의 무게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부사장(왼쪽 네 번째)이 지난 5월 싱가포르 현지에서 진행한 한일 합작법인 사무실 개소식에서 관련 경영진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롯데지주
2일 재계에 따르면 신 부사장은 최근 싱가포르 합작법인을 맡으며 경영 보폭이 더욱 확대됐다. 신 부사장은 최근 3년간 미래성장실, 바이오, 식품 등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사업을 잇달아 맡으며 경영 보폭을 빠르게 넓혀왔다.
신 부사장은 2023년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아 그룹 미래사업을 이끌기 시작한 뒤, 2025년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를 맡으며 사업 책임을 한층 키웠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롯데 식품사의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는 싱가포르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면서 신사업인 바이오를 넘어 그룹의 전통적 핵심 사업인 식품까지 역할이 확대됐다.
◆ '원 롯데' 최전선에 선 신유열
특히 이번 싱가포르 합작법인은 단순한 식품사업 확대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 롯데의 식품사업을 연결하는 '원 롯데' 전략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신 부사장의 역할 확대가 단순한 경영 수업을 넘어 신동빈 회장이 추진하는 ‘원 롯데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 부사장이 한일 합작 전략의 주요 소통 창구 역할을 맡으면서 한국과 일본 롯데 간 경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역할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신 부사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국내 롯데 계열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며 양국 경영진과 접점을 넓혀왔다. 이 때문에 한일 협력 시너지를 극대화할 적임자로 꼽힌다.
동시에 이번 역할 확대는 '원 롯데' 전략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한일 롯데를 아우르는 후계 기반을 다지는 의미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 부사장이 승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내 지배력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의 신뢰와 협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히기 때문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 롯데와 연결되는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이다. 신동빈 회장 역시 롯데홀딩스 이사회와 종업원지주회 등 우호 지분을 기반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신 부사장은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와 LSI·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를 맡으며 일본 경영진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롯데지주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지만 보유 지분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계에서는 이러한 한일 경영 경험과 네트워크 축적이 향후 한일 롯데를 아우르는 경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경영 경험의 폭이 넓어질수록 후계자로서 입증해야 할 성과의 범위 역시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가 그룹의 미래 성장사업과 핵심 사업을 잇달아 신 부사장에게 맡기면서 그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할 무대도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 직함보다 성과를 묻는 시장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싱가포르 식품 합작법인은 신 부사장에게 본격적 성과 검증의 첫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오가 장기 투자 산업이라는 특성상 단기간 평가가 어려웠다면 식품은 매출과 수익성, 시장 점유율, 해외 사업 확대 등 비교적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송도 메가플랜트 건설과 글로벌 수주 확대를 추진하는 투자 단계에 있어 사업 성패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미래성장실 역시 신사업 발굴과 투자 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인 만큼 단기간에 성과를 수치로 입증하기 어렵다.
물론 신 부사장이 책임지는 사업들의 성과를 현 시점에서 곧바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미래성장실은 단기 실적을 내는 조직이라기보다 그룹의 신사업 발굴과 중장기 투자 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이고, 바이오 역시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인 만큼 단기간 실적으로 경영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식품 합작법인 역시 한국과 일본 롯데의 식품사업을 통합해 아시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신 부사장에게 글로벌 사업 운영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재계에서는 신 부사장이 그룹 핵심 사업을 잇달아 맡은 만큼 앞으로는 각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느냐가 후계 경쟁력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롯데가 화학사업 부진과 계열사 재무 부담, 그룹 체질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을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하고 재무 부담을 관리할 수 있는 경영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시장이 후계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새로운 직책보다 검증된 경영 성과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롯데그룹은 주력 계열사의 실적부진과 그룹 합산 재무부담 확대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계열 전반의 실적 회복 지연과 확대된 금융비용 부담, 신사업 관련 투자 지출 계획 등을 감안할 때 그룹의 재무부담 완화는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