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1919년 한 판결을 내놨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도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라고 외쳐 공황을 일으키는 사람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게 내버려 둘 순 없다.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혐오와 조롱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배재고등학교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가를 두고 표현의 자유 등을 내세워 정치쟁점화에 나섰다. 과연 국민의힘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이 넘쳐나는 사회를 원하는가. 정녕 집권할 의지가 있는가, 묻게 된다.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정문 앞에 지난달 30일 "민주화 운동을 모욕하는 국민에게 민주주의는 과분하다"는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명백히 과도하고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정점식·한동훈·나경원·이준석·김재섭 등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은 인사들은 각각 '과잉 징계', '마녀사냥', '이재명 치하 과잉 대응'이라는 주장을 잇달아 내놨다.
앞서 배재고 선수들이 지난달 29일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광주제일고(광주일고)전에서 상대편인 광주일고 선수들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가를 불렀다. 이에 파문이 확산되자 배재고 야구부에게 1일 6개월 출전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페이스북에서 "아이들의 꿈을 짓밟을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징계 재고를 요청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어린 학생들에게 6개월 출전정지를 하는 것은 과도하다. 방송에서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한 최욱씨도 사과만 하고 계속 방송 중이고, 스타벅스도 영업 정지를 당하지 않았다"며 배재고 학생들을 두둔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스벅 가는 자유도 뺏더니, 아이들 꿈마저 빼앗냐"며 "이것이 이재명 정권 치하의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도 "대통령을 필두로 온 정부 부처가 스타벅스 때리기에 나서더니, 이제는 교육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일제히 나서서 배재고 선수들을 마녀사냥 한다"고 비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숫가락을 얹었다. 이 대표는 "6개월 출전 정지는 철회돼야 한다"며 "얼마 전까지 선배 패고, 경찰 패고, 말리는 시민 패고 5·18 핑계를 대는 오만한 서울시장 후보를 봤다"고 했다.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취임 첫날인 7월1일 전남광주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배재고 선수단의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상처를 입은 야구부를 위로하고 훈련시설 개선을 위한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장은 '과도한 처벌'이라면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는 명확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혐오와 조롱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좀먹는 것인지,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욕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얼마나 위협할 수 있는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가해자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면서 피해자인 광주일고 선수들과 광주시민, 국민에 대한 공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는 '극단적 행태'까지 보인다.
이지애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은 1일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배재고 야구부 응원 논란에 대해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자, 커피 마시러 가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부분인데"라고 주장했다.
홍석준 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30일 KBC광주방송 '박영환의 시사1번지'에서 배재고 학생 징계 논의를 두고 "이건 표현의 자유 이런 것도 있지만 스포츠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도 망각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징계하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공산주의 국가"라고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2017년 합격생들이 페이스북 단체 채팅방에서 성폭력, 홀로코스트, 아동학대, 소수인종을 조롱하는 밈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10여 명의 입학을 취소한 바 있다. 아직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학생들이었지만, 하버드대는 이들의 발언이 공동체 기준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책임을 물었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조롱의 표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버드대학은 이들 합격생 10여 명의 미래를 짓밟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