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았다. 현직 대통령의 대법원 출석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일로,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 관련 구두 변론을 방청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당일 서명한 이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임시 체류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14조의 기존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22개 주와 워싱턴DC가 즉각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하급심은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행정명령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발효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출생시민권 관련 대법원 공개변론에 미국 현직 대통령 최초로 참석했다. 사진은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된 법정 내부를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그린 스케치 ⓒAP/연합뉴스
이번 재판에서 미국 행정부 측은 1898년 '웡 킴 아크' 판례를 근거로 "당시 시민권 인정은 부모가 합법적으로 정착한 상태였기 때문"이라며, 불법·임시 체류자 부모의 경우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은 "14조 어디에도 부모나 정착에 관한 언급은 없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 전 이민 정책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6월 이전 판결을 요청했지만, 현지 언론들은 승산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과연 우리라고 다를까
한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물론 미국과 동일한 맥락은 아니지만, 복지 정책 영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지난 19일 대한고려인협회와 중국동포단체협의회는 재외동포 비자(F4) 소지자를 정부 지원금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의견서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들은 F4 소지자가 단기 체류자가 아닌 장기 정착·경제활동을 전제로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이라고 주장했지만, 행정안전부는 과거 한국 국적 보유 여부나 직계비속 여부를 기준으로 선을 그었다.
이미 정착해 세금을 내는 이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타당한지, 공동체의 경계를 국적만으로 가르는 방식이 여전히 '한민족'이라는 오래된 틀에 갇힌 것은 아닌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HD현대그룹은 올해부터 외국인 노동자와의 계약이 종료되면 해당 자리를 내국인으로 우선 대체하기로 했다. 조선업 호황에도 외국인 채용이 청년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비판을 수용한 조치로, 여론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HD현대의 내국인 우선 채용 정책이 알려지자 여론은 대체로 "잘됐다", "현대 일 잘한다", "우리나라 사람부터 먼저 챙기자", "그동안 외국인 혜택이 역으로 너무 많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스타그램
그러나 이는 현실을 단순화한 측면이 크다.
외국인 인력이 확대된 배경에는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으로 내국인 채용이 쉽지 않았고, 그 공백을 외국인 노동자가 메워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공공연한 현실은 외면한 채, 그저 화풀이할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함이 남는다.
또한 외국인 고용을 줄이면 곧바로 내국인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내국인 대 외국인의 일자리 경쟁'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문제를 축소한다.
그 결과 복잡한 구조적 문제는 가려지고, 논쟁은 유치한 감정싸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소모적 갈등 뒤에 정책적 진전이 뒤따르기는 쉽지 않다.
자국민 우선주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과 한국 사례 모두 결국 '구성원'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운 반이민 정책 기저에는 공동체의 경계를 좁히려는 인간의 보편적 충동이 자리한다.
한국 사회 역시 그 충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외국인 노동을 필요로 하면서도 배제의 언어를 쉽게 꺼내 드는 현실, '우리 식구'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긋는 익숙한 방식을 이제는 스스로 점검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