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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도 중요하다. 죽음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최근 우루과이에서 중남미 최초로 '입법'을 통해 안락사를 권리화한 것은 한국에도 많은 의미가 있다.   

[허프 생각] '죽음의 자기결정권' 우리도 논의할 때 된 것 아닌지, '좁은 문'이지만 꼭 열어야 할 문이기도 하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AI 이미지.

 

우루과이가 열어젖힌 새로운 문

우루과이는 15일(현지시각)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의 서명을 바탕으로 안락사 법규를 본격 시행했다. 우루과이 안락사법의 핵심은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다. 

이 법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상황에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규정하고 보장하는 것'을 명시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루과이의 안락사법이 오남용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오남용 방지 절차도 촘촘하게 규율하고 있다.

우루과이 안락사법에 따르면 '주치의 상담 및 심리 평가 → 다른 전문의를 통한 객관적 검증 → 주치의 재면담 및 증인 2인 입회 아래 최종 서면 확인'의 다단계 심사를 거쳐야 안락사가 승인된다. 자기결정권과 생명보호의 균형을 입법으로 구현한 것이다.

세계 제도는 어디까지 왔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이미 적지 않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제화했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 합리적 대안 없음, 명확한 의지 표현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한다. 

벨기에는 나아가 2002년 안락사 법제화 이후 2014년에는 연령제한까지 폐지해 미성년자도 전문의의 판단과 법정대리인 동의하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중남미에서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가 각각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범죄가 아님'으로 먼저 인정했고, 우루과이는 이를 입법으로 완성했다. 이미 세계적 흐름은 '존엄사는 기본권'이라는 방향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허프 생각] '죽음의 자기결정권' 우리도 논의할 때 된 것 아닌지, '좁은 문'이지만 꼭 열어야 할 문이기도 하다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이 안락사 시행령에 서명하고 있다(왼쪽). 우루과이 상원이 2025년 10월 안락사 법안을 의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연합뉴스

 

한국 헌법에 보장된 자기결정권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이로부터 '자기결정권'을 도출해왔다. 

고통스러운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결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자기결정권의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법조계에서도 존엄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불치병 환자가 2023년 12월 '조력 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것은 입법부작위로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2024년 1월 이를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본격 심리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2017년, 2018년 유사한 헌법소원을 기각했지만 이번에는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다만 한국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조력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으며, 보건복지부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 신중함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안락사는 잘못 설계될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죽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히 존재한다.

좁은 문, 그러나 반드시 열어야 할 문

이런 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락사 입법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면적 허용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불치병 환자'에 한정한 엄격한 입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벨기에처럼 정신적 고통이나 인지저하 노인 등으로 대상을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당장 감당하기 어려운 논의다. 먼저 말기 암 등 객관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는 환자에 한정해서 논의를 이어 가야 한다. 

우루과이처럼 다단계 의료 심사와 증인 제도를 도입해 엄격한 절차와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친 뒤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안락사 오남용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한국에서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단계'의 환자에 한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만을 허용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치병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는 부족하다. 불치병 환자가 고통을 견디며 죽어가는 과정을 단축하거나 멈출 수 있는 권리, 즉 '적극적 자기결정'은 아직 법 바깥에 있다.

우루과이 대통령은 시행령 서명 직후 "오랜 토론과 성찰, 경청의 과정을 거쳐 시행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한국도 그 토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 회부된 조력 존엄사 헌법소원은 단순한 법률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는 목소리다.

존엄은 삶에만 있지 않다.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은 존엄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가 우리에게 약속한 존엄의 마지막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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