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를 만나면 꼭 분통 터지는 말을 듣는다. 내 경력을 보며 "너무 자주 옮겼고, 그래서 한 분야의 전문성이 없어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평가부터 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별로인 사람처럼 느껴져 주눅이 들었던 적도 많다.
돌이켜보면 나는 몇 회사를 제외하면 2~3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겼다. 그렇다고 회사를 대충 다닌 적은 없다. 늘 영원히 다닐 것처럼 일했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잡았을 뿐이다. 무모할 만큼 용감했고, 논리는 따졌지만 결국은 "해보고 싶다"는 감정을 따라갔다. 연봉이나 직급을 계산해 움직인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깎고 간 적도 있고, 그 대신 다른 걸 얻을 수 있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몇 회사를 제외하면 2~3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겼다. 늘 영원히 다닐 것처럼 일했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잡았을 뿐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항상 좋은 결정만 했던 건 아니다. 거지같은 결정도 분명히 있었다. 대부분은 금방 알았다. 아, 잘못됐다. 그러면 뼛속부터 후회가 올라왔고, 원래도 자책이 많은 성격이라 결정의 과정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끝없이 되짚었다. 그때 알았다. 좋은 선택만 하며 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그러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중요한 건 그때의 결정이 아니라, 그 이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다. 잘못된 선택을 "완전히 망한 선택"으로 둘지,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으로 바꿀지는 결국 내가 만든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아니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거지같은 결정을 했을 때 더 악으로, 깡으로, 어떻게든 중간 이상은 가보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성과는 나왔고, 경력은 이어졌다.
오랫동안 사회는 "이직=충성심 없음"이라 여겨왔다. 한 회사에 오래 있어야 믿을 만하고, 이리저리 옮기면 신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깊었다. 하지만 정작 오래 다닌 사람도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쉽게 정리되곤 한다.
이직과 충성심은 애초에 별개의 문제다. 한 산업, 한 회사에 오래 있으면 전문성은 생긴다. 맞다. 그런데 변화가 빠른 시대엔 그 전문성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여러 산업을 거치며 쌓은 감각과 방식, 환경이 바뀌어도 작동하는 힘, 낯선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근육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오히려 그런 것이 내 경쟁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흩어진 경력일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다.
이 시대에 더 나은 성장과 기회를 위해 움직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여전히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회사가 투자한 게 얼만데" 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조직의 미래는 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건, 너무 죽도록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단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만회하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게 항상 답이 아니다. 적당히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는 것도 선택이다. 세상에 "절대로" 안 되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어디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이직 자체가 아니라, 이직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건 부끄러운 경력이 아니라 꽤 자랑스러운 생존력이다.
그러니 프로 이직러들이여, 자랑스러워하길. 우리는 시도했고, 계속 살아남은 사람들임을.
글쓴이 조정열 전 에이블씨엔씨 대표이사는 K옥션, 갤러리현대, 쏘카, 한독, 에이블씨엔씨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예술, IT 플랫폼, 제약, 소비재 산업을 넘나들며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다. 1991년 동서리서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케팅 사관학교' 유니레버와 로레알 한국 지사에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담당하며 10년을 보냈다. 이후 MSD 한국 지사 사업부 담당, 피자헛 한국 지사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며 대표가 되기 전 10년간 임원 생활을 했다. 현재는 후배 경영인과 직장인의 멘토로, 예술계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아트 프로모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전략보다 '지금, 여기'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