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원들의 땀, 그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들이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기술이 탄생한다.
그렇기에 기업의 기술은 단순 영업 자산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국내 전선업계 1·2위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은 이 당연한 존중이 실제 현장에서도 지켜지고 있는지 묻게 한다.
기업은 공정과 정의 위에서 성장해야 한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경찰은 5월28일 대한전선과 건축설계업체, 설비업체 법인 3곳과 임직원 및 관계자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약 3년간의 수사 끝에 내린 판단이다.
경찰이 주목한 것은 대한전선 임직원들이 2022~2023년께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공장 건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LS전선의 영업비밀을 부당하게 취득해 설계에 반영했다는 의혹이다. LS전선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자사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를 맡았던 건축설계업체가 대한전선의 공장 설계에도 참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쟁점은 단순히 공장 건물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데 있지 않다. 경찰은 공장 내부 시설 배치와 생산설비 구조, 케이블 보관·이동 방식 등 생산 효율과 품질을 좌우하는 세부 노하우가 활용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경찰의 송치는 수사기관의 판단이지 법원의 최종 판단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바라볼 때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바로 대한전선의 최대주주가 호반그룹 계열사 호반산업이라는 사실이다.
대한전선은 2021년 호반산업에 인수됐다. 호반산업은 2026년 6월30일 기준 대한전선의 지분 39.9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호반그룹 홈페이지 그룹사 현황에도 대한전선이 올라와 있다.
호반그룹은 두 회사의 분쟁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5년 초 호반그룹이 LS전선의 모회사인 LS 지분을 3%가량 사들인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3%라는 숫자였다.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가진 주주는 임시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과 주주제안권, 회계장부 열람권을 갖는다.
이에 관해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25년 5월 LS 분석 보고서에서 "호반은 '전력 케이블 등 전력 산업의 성장성'을 지분 매입의 이유로 들었으나, 이면에는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진행 중인 해저케이블 레이아웃 유출 경찰 조사와 관련된 법적 분쟁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레버리지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전선의 기술 유출 의혹이 호반그룹과 무관한 별개의 사건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호반그룹을 둘러싼 과거 논란을 살펴보면 이번 사건을 더욱 무겁게 바라보게 된다.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벌떼입찰'을 통한 호반그룹 오너 2세에 대한 부당 지원 논란이다.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호반건설이 2013~2015년 공공택지 입찰에서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해 당첨 가능성을 높인 뒤, 확보한 택지를 오너 2세가 소유한 회사들에 넘기는 등의 부당한 지원을 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호반건설에 시정명령과 함께 6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물론 이 사안은 법적 절차를 거쳤다. 2025년 11월 대법원은 공정위가 부과한 608억 원 과징금 가운데 약 365억 원을 취소한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결과적으로 약 243억 원의 과징금이 유지됐다.
호반그룹의 언론 대응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2년 호반건설은 자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을 보도한 KBS와 취재 기자 등을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호반건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취재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금액에 대한 급여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이에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은 성명을 통해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취재 기자를 피고로 삼고, 기자 급여에까지 가압류 신청을 하는 것은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행태"라며 "호반건설의 대응은 KBS와 취재기자를 본보기 삼아 자사를 향한 언론들의 후속 취재를 막아보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일련의 논란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호반그룹과 대한전선의 성장은 과연 공정과 정의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가.
'기술 유출 의혹'에 휩싸인 대한전선과 '오너 2세 부당 지원', '언론 재갈 물리기'로 도마 위에 올랐던 호반그룹. 이 두 가지 풍경이 묘하게 닮아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