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사장이 자동차운반선(PCTC) 사업의 전략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그간 비싼 단기 용선을 줄이고 장기 용선 위주로 배를 운영해 원가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값이 올라도 배를 더 빌려 스팟(단기 계약) 시장을 주도하는 방안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이는 중국 자동차 수출량이 시장 전망보다 급격히 늘면서 자동차운반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 모자란 지금 선복(화물 적재 공간)을 넉넉히 쥐면 물량과 운임 흐름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사장이 자동차운반선(PCTC) 사업의 전략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이 사장이 3월26일 서울 성동구 본사에서 열린 제2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현대글로비스
11월3일 해운 및 증권업계에서는 중국차 수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금이 이 사장의 해운 전략에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사장은 10월30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최대한 신조(새로 건조한 배) 인도받는 선박을 돌리고, 중단기 용선 시장에 새로 나오는 용선들도 최대한 긁어모아서 스팟 시장에서의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하는 쪽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켓메이커 전략이란 시장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가격과 거래 흐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글로비스가 새로 지은 배를 넘겨받는 대로 모두 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선주가 내놓는 배까지 짧은 기간씩 빌려 단기 운송 시장에 내놓을 배를 넉넉히 쥐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이 사장의 방침과 대비된다. 이 사장은 2025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선 및 장기용선 선박 중심의 고정성 선박을 확보하고 운항 효율성을 제고해 비계열 고객 확대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직접 보유하거나 오래 빌린 배로 선대를 꾸려 현대차그룹 밖의 비계열 고객을 늘리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는 "고용선료 선박들은 반납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1분기에도 장기 용선 3척을 늘리는 대신 용선료가 높은 배 2척을 돌려줬다.
이 사장이 지금 시점에서 전략 전환을 검토하는 것은 중국차 수출이 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현대글로비스는 중국 업체들의 수출이 지난해 700만 대 수준에서 올해 1200만 대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중국에서 받은 분기 선적량도 지난해 12만~13만 대에서 올해 15만~18만 대 수준으로 뛰었다. 그러나 중국 수출량이 더 빠르게 늘어 점유율은 여전히 12~13%에 머물러 있다.
이 사장은 "늘어나고 있는 중국 OEM(완성차 업체)들의 수출 시장에서 저희 마켓 쉐어(시장점유율)를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점유율은 제자리지만 실어 나르는 차량이 늘고 운임도 오르면서 현대글로비스 실적은 크게 늘었다. 현대글로비스의 3분기 매출은 9조536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3.1% 늘며 분기 기준 처음 9조 원을 넘었다. 영업이익은 5665억 원으로 8.1% 늘어 분기 최대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글로비스가 선제적으로 확보한 선박이 경쟁력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1월2일 보고서에서 "현대글로비스는 2023년부터 대형 PCTC 30척을 신조 및 장기용선을 통해 경쟁사 대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며 "공급부족 국면에서 추가 선복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 3분기 현대글로비스 해운 부문의 매출은 1조8137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7.1%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1천억 원가량 늘었다.
이 사장은 호황이 수년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중국차를 나를 배가 모자란 지금 상황이 단기간에 극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2028년, 2029년 그때 신조 인도가 다 되더라도 공급과잉 우려는 전혀 없는 상황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며 "(경쟁사들이) 지금 발주하면 2031년도 이후에 배가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같이 PCC(자동차운반선)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대형선 인도받는 선사가 저희가 되기 때문에" 배를 최대한 모으는 쪽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용선료가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비용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11월2일 보고서에서 6500대급(차량 6500대를 실을 수 있는 규모) 자동차운반선 1년 용선료가 "1월 4.75만 달러/일에서 10월 10만 달러/일로 연초 대비 111% 상승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