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사 장금상선이 초대형 유조선 운영사로 성장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운임 책정에도 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장금상선이 해협 내 유조선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미국·이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높은 수준의 운임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란이 장금상선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면서 소속 선박들이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란은 1일부터 장금상선에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이에 계속된 운항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선원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조선들이 10월12일 시리아 바니야스 석유 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1일(현지시각) 장금상선이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운송을 장악했다며 향후 유조선 운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NYT, '호르무즈 해협의 거물' 장금상선 조명
해양 분석 업체 로이드리스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장금상선은 9월 초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노르웨이 아크틱 증권의 유조선 전문 애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바르트 스케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장금상선은 (호르무즈 해협 운항) 시장을 독점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란 전쟁이 끝나더라도 해운사들이 중동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원유를 운송하는 데 높은 운임을 계속 부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뉴욕타임스는 소수 업체가 유조선 시장을 장악하면 장기적으로 운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교 문제 연구 기관인 디펜스프라이어리티시의 로즈메리 켈라닉 이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이전처럼 해협을 통한 선박 운송이 저렴하고 쉬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던 시절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940척으로, 각각 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벌 선박 중개업체 BRS선박중개사에 따르면 장금상선은 11월 기준 전 세계 VLCC의 약 14%인 129척을 보유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장금상선이 이를 활용해 호르무즈 해협 운임 책정에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미국 외교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수호 재단의 맥스 메이즐리쉬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장금상선이 운임 책정에 있어 주요 주체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장금상선은 지난해 12월부터 빠르게 유조선 확보에 나서면서 몸집을 급속도로 불렸다. 당시 장금상선이 보유한 VLCC는 42척에 불과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에 추가적 제재를 가하면서 이를 운송하던 VLCC 상당수가 운항에 제약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에 의존하던 수입국들이 대체 수입처를 찾으면서 유조선 수요도 증가했다. 장금상선은 선박 노후화에 따른 교체 수요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따른 VLCC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선박 매입에 나섰다.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장금상선은 VLCC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글로벌 해운 데이터 분석업체 베슨노티컬은 8월20일 보고서에서 장금상선이 중고 VLCC 인수 시장을 장악하며 2026년 1월부터 총 73척을 약 60억 달러(약 8조 원)에 매입했다고 밝혔다. 장금상선은 신규 용선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으로도 선박을 추가 확보했다.
◆ 이란, 장금상선 겨냥해 법적 제재 위협
장금상선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란도 견제에 나섰다. 이에 따라 향후 선박 운항과 선원 안전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은 10월27일 장금상선에 오는 11월1일부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PGSA는 과거에도 해운사와 선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법규 위반자로 지목해 왔다. 그러나 특정 상선의 선단 전체를 대상으로 전면적 법적 조치를 예고한 것은 장금상선이 처음이다.
과거 이란은 제재 규정을 위반한 선박에 벌금 부과, 구금 또는 선박 압수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선박은 미래의 통항도 금지된다.
해당 선박과 화물을 환적하는 선박 및 운영업체도 블랙리스트에 추가될 수 있다. 주요 에너지 기업과 용선사, 정유업체 등도 운영상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당 선박이나 관련 선단의 이용을 중단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장금상선은 선박 간 화물 환적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한 유조선이 해협을 지나 오만만까지 석유를 운반하면, 아시아 수입국으로 향하는 다른 유조선이 이를 옮겨 싣는 방식이다. 이란의 제재가 현실화하면 장금상선의 해협 운항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해운협회는 10월28일 이란이 법적 조치를 예고한 선박은 장금상선이 실소유한 선박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반박하고 대응에 나섰다.
선원들의 안전에 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은 7월 이후 장금상선 소속 선박을 최소 7척 공격했으며, 10월에는 3척을 공격했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10월 이란이 공격한 선박은 총 27~30척 정도로, 전체 공격 가운데 약 10%가 장금상선 소속 선박을 겨냥한 셈이다.
PGSA는 10월27일 발표에서 장금상선 소속 선박들이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많은 통항 규정 위반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란이 향후 장금상선 소속 선박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도 선원노조의 마노지 야다브 위원장은 뉴욕타임스에 "선주들이 선원들의 안전보다 이윤 극대화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부 해운 회사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