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을 수사팀장으로 발탁했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특검)가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권력형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겠다던 박영수 전 특검이 정작 특검으로 임명되기 약 2년 전 대장동 민간업자로부터 청탁 대가로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법원에서 재차 인정된 것이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 형사15-2부(이희준·성언주·원익선 고법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특검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 원을 선고하고 2억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1심에서 선고된 징역 7년보다 형량이 1년 줄었지만, 실형 판단은 유지됐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것은 2014년 12월 대장동 민간업자 남욱 변호사로부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받은 혐의다. 당시 우리은행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었던 박 전 특검은 대장동 사업에 우리은행이 참여하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았으며, 재판부는 금품 수수와 직무 사이의 대가 관계를 인정했다.
1심은 박 전 특검이 총 3억 원을 받았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이 가운데 1억원에 대해서는 관련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봤다.
주목할 대목은 금품수수 시점이 박 전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박 전 특검은 2016년 11월30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임명된 직후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그는 수사 대상자의 지위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실관계를 규명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튿날에는 윤석열 당시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를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 지휘부와 갈등을 빚은 뒤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박 전 특검의 요청으로 대형 수사에 복귀하게 됐다.
당시 박 전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처음에는 수사팀장 제안을 사양했다면서도 "같이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후배다"라며 자신이 강하게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국정농단 수사를 이끌며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데 나섰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 판결에 따르면 박 전 특검은 이처럼 법과 원칙을 내세워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하기 약 2년 전부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와 금품을 주고받은 셈이다. 다른 사람의 비리를 수사하겠다고 나선 인물의 과거 금품수수 사실이 뒤늦게 법원의 유죄 판단을 받은 것이다.
다만 박 전 특검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대장동 사업 관련 청탁 대가로 50억 원을 약속받았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혐의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200억 원과 단독주택 부지 등을 약속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면소로 판단했다.
박 전 특검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재식 전 특검보에게는 징역 5년과 벌금 2억 원이 선고됐다. 두 사람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보석을 취소하지 않아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재판부는 박 전 특검이 금융기관의 임직원에게 요구되는 청렴 의무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해 이 같은 의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