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암살자(들)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을 국감 참고인으로 불러 영화 내용을 따져 묻겠다고 나섰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여야 합의가 불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의 특정 묘사에 국민의힘이 반발해 국감 소환까지 추진하면서, 보수 진영의 상징적 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놓고 여야 공방도 한층 거세지는 모습이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영화 '암살자(들)'을 제작한 허진호 감독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라도 불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29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다음 달 국감에 출석할 증인과 참고인 명단을 의결했다.
이날 여야가 맞붙은 쟁점 가운데 하나는 허 감독의 참고인 채택 여부였다.
국민의힘은 '암살자(들)'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루면서 박 전 대통령 측이나 당시 중앙정보부가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며 허 감독의 출석을 강하게 요구했다.
문체위 국민의힘 간사인 조은희 의원은 "창작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가족 배후설을 강하게 암시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것 역시 영화적 상상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문체위 국감에 영화 '건국전쟁2'의 김덕영 감독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례를 들며 "증인 채택이 어렵다면 허 감독을 참고인으로라도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국전쟁' 시리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행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러나 민주당은 영화 내용을 이유로 감독을 국감에 부르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맞섰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각자 전문 영역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정치도 창작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위 민주당 간사인 이정문 의원도 "지난해 '건국전쟁2' 감독이 참고인으로 나온 것은 해당 영화의 독립영화 승인 및 취소 절차의 적절성을 묻기 위함이었지, 영화 내용의 왜곡 여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허 감독은 이날 의결된 국감 참고인 명단에서 빠졌다. 다만 국민의힘은 허 감독의 국감 출석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참고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앞서 정치권에서는 이미 '암살자(들)'을 놓고 장외 설전이 이어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 당한다.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다"라고 적으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영화 포스터에 '예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게시물을 공유하며 불매 움직임에도 동참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며 사전검열에는 반대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상업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5·18이 북한 소행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면, 세월호 참사가 민주당 소행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면 정말 많은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라며 "마찬가지로 이 영화, 비판받아 마땅하다. 표현의 자유에는 비판할 자유도 포함된다"고 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도 27일 페이스북에서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다. 북한의 테러라는 역사적 진실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법적 대응도 시작됐다.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이날 서울경찰청에 허 감독과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정치권이 창작물의 내용을 직접 심판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허 감독의 국감 출석 추진에 반대한다며 "국힘쪽은 내용을 따지겠다는데 국회가 '영화검열단'이냐"라고 비판했다.
전날에도 장 대표를 겨냥해 "장동혁 대표는 싸우다 싸우다 영화와 싸우나?"라며 "'암살자(들)'은 픽션이다. 긁어 부스럼 만들어 좋을 게 뭐 있을까? '암살자(들)' 보러 가야겠다!"고 적었다.
한편 문체위는 이날 박진영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김광현 네이버 최고데이터·콘텐츠책임자(CDO), 최주희 티빙 대표이사 등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