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을 내린 가운데 당권을 놓친 정청래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에 주목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정청래 당대표 후보가 17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더불어민주당 정기 전국당원대회에서 정견 발표를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의원이 비록 당대표 연임에는 실패했지만 당원들의 탄탄한 지지와 대중적 영향력을 동시에 입증하며 명실상부한 '발광체'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뉴 이재명 vs 전통적 지지층'의 대립 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정 의원은 앞으로 "할 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행보가 새로 닻을 올린 '김민석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8일 민주당에 따르면 김민석 신임 당대표는 54.08%를 얻어 정청래 후보(45.92%)를 제치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두 사람의 표 차이는 8.16%포인트였지만 정 후보가 전체 당원 투표에서 상당한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승리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후보는 당원 투표와 별개로 민심을 반영하는 여론조사에서 50.70%를 얻어 김민석 대표(49.30%)를 앞섰다. 여기에 최민희, 한민수, 이성윤 의원 등 '팀정청래' 최고위원 후보 3명이 지도부에 모두 입성하면서 선출직 최고위원은 친청(친정청래) 3 : 친석(친김민석) 2 구도가 형성됐다.
김민석 대표가 전당대회 시작 전부터 '명픽'(이재명 대통령 선택) 후보라는 후광을 얻었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선호투표제를 적용하고 나서야 정 후보를 꺾을 수 있었다는 점도 정 의원이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연희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청래 의원은 사실상 ‘2대1의 싸움’이라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2차 결선까지 올라 45%의 지지를 얻었다"라며 "연임 자체가 애초부터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도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정치적 저력을 보여준 것으로 당내 선거에서는 졌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커졌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민석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로 '통합'을 꼽고 있다. 특히 전당대회를 통해 확인된 정청래 의원 지지층들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명'(반이재명)이라는 공격을 받은 정 의원이 45%가 넘는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명심'(이재명 대통령 의중)만으로 당심 전체를 장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친민주당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날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역산해보면 정청래 후보가 약 5% 정도 앞선 것으로 보인다"라며 "광주·전라가 승부처였는데 김민석 대표는 광주·전라를 제외한 전국 종합통계와 여론조사 수치를 염두에 두고 정 의원의 손을 잘 잡아야 한다. 그 숫자가 적지 않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단기간 안에 지지층 사이의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지지층 사이에) 상처가 너무 깊어서 하루 아침에 뭔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당대회 직후인 오는 19일 당권주자였던 김 대표와 정 의원, 송영길 의원 세 사람과 만찬을 통해 직접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당대회 결과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1년 전 전당대회에서 정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뒤 경쟁자였던 박찬대 의원과 함께 이 대통령이 만찬을 가진 것은 열흘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대표 시절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아왔지만 당대표라는 지위를 벗어난 만큼 적극적으로 견해를 개진하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뒤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개혁 당대표 후보로 그쳤지만, 그 깃발을 내릴 순 없다"며 "당대표 1년간 하면서 할 말 못 하고 참고, 스님도 아닌데 사리가 나올 정도였다. 당대표일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겠다. 할 말은 하고 살겠다. 인생 뭐 있습니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민석 대표는 이겼지만 그의 주장은 진 것이 많다"며 "결과적으로 정청래가 숫자로 졌지만 지지자는 이겼고, 주장까지 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졌던 김민석 대표의 '반명·신천지·분열주의 3자 비밀연합' 주장에 대해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른바 '팀정청래'로 묶이며 정 의원과 공동 행보를 펼쳤던 최민희·한민수·이성윤 최고위원도 김 대표를 향한 견제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정 의원이 새 지도부의 주요 정책과 당청 관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최고위원 3명이 가세한다면 지도부 내 계파 갈등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취임 축하 인사 차 방문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홍익표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다만 새로운 민주당 지도부가 당면한 현안인 세제 개편안 등 부동산 정책에 관해 여론을 수렴하며 조정하는 과정에서는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명당에서 "계파라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것이 노정될 현안이 없다"며 "지금 급선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나 세제 개편은 계파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개혁 법안의 수정이나 총선을 앞두고 등장할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서울시장과 강릉 국회의원 재선거 국면에서는 정 의원의 견해가 민주당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최민희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개혁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 가치, 1인1표 당원 주권 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이 가치, 이해찬 정신으로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하겠다는 이 가치에 대해서 사실상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정청래 후보에게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 가치를 지켰다고 생각한다"며 전당대회 과정에서 강조해 왔던 개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