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숏폼 영상을 보다 운동화를 주문하고, 집에선 넷플릭스를 보며 배송을 기다린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한 이 풍경들은 유통 플랫폼들의 경쟁 방식, 세력 구도의 전면적 재편을 보여준다. 유통 플랫폼들의 관계는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 온라인-오프라인의 경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계기로 플랫폼 경쟁 시대에 맞는 유통 규제 재설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연합뉴스
이마트의 경쟁자는 더 이상 다른 대형마트가 아니다. 쿠팡이고, 배달의 민족이며, 네이버고, 소비자의 시간을 차지하는 다양한 플랫폼이다. 업종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기업들은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14년 전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최근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의 본질은 새벽배송 허용 여부가 아니다. 대형마트는 이미 플랫폼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규제는 여전히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는 데 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러한 규제가 나름의 설득력을 가졌다. 당시 유통의 중심은 오프라인이었고 소비자는 주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해 장을 봤다.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소비가 전통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정책적 가정도 가능했다. 그래서 월 두 차례 의무휴업과 심야 영업 제한이 도입됐다.
문제는 시장은 법보다 훨씬 빨리 변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여러 플랫폼을 오가고, 기업들은 상품보다 소비자의 시간을 붙잡기 위해 경쟁력을 쏟고 있다. 쿠팡은 배송 플랫폼에 OTT와 퀵커머스를 묶었고, 네이버는 검색과 쇼핑, AI를 결합했다. 올리브영과 무신사는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앞세워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있다. 경쟁의 기준은 가격에서 생태계로, 업종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규제는 대형마트의 발목만 잡는 꼴이 됐다. 쿠팡은 24시간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배달의 민족은 심야에도 주문을 받는다. AI는 검색과 쇼핑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 점포와 물류 거점을 갖춘 대형마트는 매장이 문을 닫는 순간 배송을 멈춰야 했다. '홈플러스 회생 사태'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 새벽배송 규제 완화는 이런 불균형을 일부 해소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규제를 푼다고 경쟁 환경이 곧바로 균형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불균형이 이어지는 동안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기업들은 막대한 물류 투자와 멤버십 생태계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다. 반면 대형마트는 규제가 풀리더라도 야간 운영 인력 확보와 추가 투자, 수익성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새벽배송 허용 여부가 아니라 달라진 경쟁 환경에 맞게 규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규제는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14년 전 오프라인 시대의 기준으로 플랫폼 시대의 경쟁을 규율할 수는 없다. 이제는 규제를 푸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달라진 경쟁 환경에 맞게 규제의 기준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