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24일 세상을 떠난 미국의 화가 마가렛 킨(Margaret Keane)이 올해로 별세 4주기를 맞았다.
킨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그가 거둬낸 여성 화가로서의 권리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마가렛 킨. ⓒ킨아이즈 갤러리
1927년에 태어난 킨은 인물화를 그리면서 다른 신체 쪽은 비교적 사실성을 유지하면서도 유독 눈만 크게 그리는 독특한 화풍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개성을 지닌 대중미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의 삶은 단순히 화가의 삶을 넘어선다. 킨이 그린 그림은 존 F. 케네디와 비틀즈, 팝아트, 라바 램프와 함께 196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는 후대 예술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물론, 사이키델릭 아트의 대표 작가 피터 맥스, 일본 현대미술의 스타 요시토모 나라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직접 킨의 작품을 언급하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킨의 작품은 처음부터 미술계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활동하던 1950~60년대 서구 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한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거대한 담론과 실험성을 중시하던 비평가들에게 킨의 그림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저급한 키치 예술(대중문화의 요소를 비튼 예술 장르)'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대중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슬픔과 외로움, 순수함이 공존하는 듯한 ‘큰 눈의 아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갤러리와 평단이 외면하는 동안에도 그의 작품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결국 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킨은 특정 계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고급예술의 경계를 허문 인물로 평가받는다. 원화를 구매할 수 없는 대중을 위해 포스터와 엽서, 인쇄 복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했고, 이는 예술 작품을 일상 속 소비재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미술 굿즈와 아트 프린트 시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생각하면, 킨은 대중미술의 상업화를 선도한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가렛 킨 '강아지 금지'. ⓒ마이아트뮤지엄
마가렛 킨 '제1성배'. ⓒ마이아트뮤지엄
차이나타운의 일요일. ⓒ마이아트뮤지엄
하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오랫동안 감춰진 그림자가 존재했다. 당시 여성 예술가들이 처했던 억압적인 현실이 그를 옥죄었다.
1950~60년대 서구 미술계는 강한 남성 중심 사회였다. 여성 예술가들은 교육과 전시 기회, 평단의 평가, 시장 진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했다. 훗날 페미니스트 미술운동이 본격적으로 제기한 문제의식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했다.
내성적 성격의 킨은 오랫동안 조용히 그림만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던 그는 30세 무렵 샌프란시스코에서 월터 킨을 만나 재혼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뛰어난 사업 감각을 지닌 월터는 아내의 그림이 가진 대중성을 빠르게 알아봤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그 결과 마가렛 킨의 작품은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각종 인쇄물과 복제품 판매를 통해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정작 그 그림의 진짜 작가를 알지 못했다. 월터 킨이 당시 남성 중심적이었던 미술계의 현실을 내세우며 "여성 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논리로 마가렛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작품의 창작자로 소개하며 명성과 부를 독차지했고, 마가렛은 침묵 속에서 그림만 그리는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킨은 30여 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세상이 열광하는 작품을 지켜보기만 하는 '유령 화가'로 살아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렸다. 여러 차례 남편에게 진실을 밝히자고 설득했지만 월터는 이를 거부했다. 심지어 마가렛이 저작권을 주장하려 하자 강압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1986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렀고,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그리고 이 재판은 미술사에 남을 유명한 장면을 남겼다. 재판부가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 요구하자, 마가렛은 즉석에서 자신의 대표적인 화풍을 완성해냈다. 반면 월터는 변명을 대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마가렛 킨이 진정한 창작자임을 인정했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됐다.
킨의 삶은 예술이 반드시 평단의 인정을 통해서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마저 빼앗겨야 했던 한 예술가가 끝내 진실을 되찾아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킨의 대표작으로는 '애완견 출입금지', '길을 잃은 아이',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 '광대 소녀', '내일 영원히',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