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홀로코스트의 교훈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이 지금은 가자지구 아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집단학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2024년 4월4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밤사이 발생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두 딸을 잃은 팔레스타인 아버지 아슈라프(Ashraf)가 딸아이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왼쪽).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FP/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은 언제나 적을 겨냥한다고 말하지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아이들이다. 총과 미사일이 겨누는 방향과 무관하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 사망 통계로 먼저 기록된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잔혹한 현실 앞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것은 정말 전쟁인가, 아니면 집단학살인가.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산하 팔레스타인 점령지(동예루살렘 포함) 및 이스라엘에 관한 독립 국제 조사 위원회(이하, 조사위)는 23일(현지시각)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고의적으로 표적으로 삼아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2023년 10월7일부터 2025년 10월7일까지 가자지구 전쟁 사망자의 약 30%가 아동이며, 2만179명이 넘는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2026년 6월12일(현지시각) 스위스 바젤에서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메이슨 스톰(Mason Storm)이 자신의 작품 '토이 스토리즈(Toy Stories)'를 촬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어린이 장난감 더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사위는 앞선 2025년 9월 보고서에서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가능성을 지적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포함한 고위 관리들이 이를 선동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조사위는 2025년 10월 휴전 이후에도 어린이들의 죽음이 이어진 점을 들어 이러한 행위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성격을 띤다고 보고,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이 가자지구 일부 또는 전체 주민을 말살 대상으로 간주하는 집단학살 의도를 지녔다고 판단했다.
2026년 6월 19일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Nuseirat)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어린이들이 파괴되거나 심하게 손상된 건물 근처에 함께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피해는 가자지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한 폭력이 급증했고, 체포·구금 과정에서 성폭력과 고문이 발생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팔레스타인 남자아이들은 구금 시설에서 강제 탈의, 구타, 식량 박탈 등 조직적인 학대를 겪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5년 9월26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나라가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는 민간인들에게 위험 지역을 떠나라고 요청하겠는가"라며 '집단 학살' 의혹을 부인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경고와 대피 조치를 근거로 학살 의혹을 부정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반복적으로 민간인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를 전쟁범죄 혐의로 수배 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월21일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엑스 계정
네타냐후 총리는 4월21일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연설 영상과 함께 "시간은 흘러가지만,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팔로워 약 15만 명을 보유한 한 엑스 계정은 "당신들은 충분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결코 느끼지 못했다"며 "이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가하는 고통을 열 배로 느끼길 바란다"고 댓글을 남겼다.
가자지구 공습과 중동 전역으로 확산된 군사 충돌 속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말한 고통이 더 이상 이스라엘만의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2026년 6월4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선 급식소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모여 있다. 이번 배급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기본적인 구호 물품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유엔 기구들은 명목상 휴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로의 필수 구호 물품 반입이 여전히 크게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PA/연합뉴스
네타냐후는 세계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충분히 되새기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이 결국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인식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는 "당신을 죽이러 오는 자가 있다면, 일찍 일어나 그를 죽이십시오"(6월22일), "우리에게 해를 끼친 모든 사람들을 제거했고, 앞으로도 제거할 것이다"(5월17일) 등의 발언을 통해 보복과 응징의 메시지를 강조해 왔다.
또한 그는 "하마스의 마지막 잔당들이 가자지구에 은신해 있다"고 말해왔고, 전쟁의 끝을 협상이나 공존이 아닌 '하마스의 완전한 제거'로 규정해왔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4월21일 예루살렘 마운트 헤르츨(Mount Herzl) 군인 묘지에서 열린 이스라엘 전몰자 추모일(욤 하지카론, Yom HaZikaron) 기념식에서 연설했다. ⓒAFP/연합뉴스
'하마스 박멸'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도 아이들의 생명이 스러지고 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저 전쟁의 시간 속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빼앗기고 있을 뿐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4월 "사실 상처는 시간보다 깊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가장 쓰라린 소식의 순간은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가정과 가족이 그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저희 부모님, 저, 그리고 제 동생도 그랬다"고 말했다.
그가 하마스의 완전한 제거를 외치는 동안, 총구 끝에서 자라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가족과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피로 쓰인 역사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역사는 그런 상처가 또 다른 비극의 출발점이 돼왔음을 수없이 보여줬다.
전쟁이 끝난 뒤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은 승패일지 모르나, 폐허에 남는 건 치유 불가능한 상처뿐이다. 하마스가 사라진다고 해서 과연 전쟁은 끝날까. 무고한 아이들의 피로 쓴 역사가 훗날 더 거대한 폭력의 방아쇠가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2026년 5월 25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의료 단지 외상 병동에서 부상당한 아이들이 의료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2025년 10월부터 공식적인 휴전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는 여전히 매일같이 이어지는 폭력 사태에 휩싸여 있으며, 이스라엘군과 하마스는 서로 상대측이 휴전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