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성적표만 놓고 보면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다른 주요 시중은행들이 이익을 늘리는 동안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두 자릿수 감소했다. 경쟁은행을 따라잡기는커녕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정 은행장은 연임 심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받게 되는 3분기 성적표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분기 순이익 1조 원을 넘어섰고, 상반기까지 감소했던 누적 순이익도 증가세로 돌려놓았다.
다만 순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정 행장이 연초 제시한 ‘경쟁은행과의 격차 축소’라는 목표까지 완전히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반기에 벌어진 격차는 일부 만회했지만, 지난해 같은 시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비이자이익 회복과 충당금 감소가 이끈 반등을 이어가는 것도 남은 과제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우리은행의 3분기 순이익이 단일 분기 기준 역대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연임 심사 앞둔 정진완, 첫 ‘분기 순익 1조’로 상반기 실적 부진 만회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 행장은 올해 3분기 실적에서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실적 부진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373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감소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이 모두 순이익을 늘린 것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3분기에만 1조 원 넘게 벌어들이면서 누적 순이익은 2조4006억 원으로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누적 순이익 증가율도 상반기 마이너스 11.9%에서 3분기 플러스 4.7%로 단번에 돌아섰다.
우리은행은 올해 3분기 지배주주 순이익 1조276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7% 증가한 수치로, 종전 분기 최대 실적이었던 지난해 2분기의 9236억 원을 넘어섰다.
정 행장으로서는 경쟁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지난해보다 순이익이 감소했다는 부담을 덜고 연임 심사에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 1위 신한은행과 격차 상반기보다는 줄였지만 지난해 3분기보다는 확대
3분기에는 정 행장이 강조한 경쟁은행 추격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분기 순이익 격차는 올해 2분기 4593억 원에서 3분기 1976억 원으로 줄었다. 한 분기 만에 격차를 절반 이하로 좁힌 것이다.
단순히 격차의 절대치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신한은행 대비 우리은행의 누적 순이익 규모도 상반기 56% 수준에서 3분기 65% 수준으로 높아졌다. 상반기에는 신한은행이 100원을 벌 때 우리은행이 56원을 벌었다면, 3분기 누적으로는 65원까지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시점과 비교하면 평가가 달라진다.
지난해 상반기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신한은행의 약 69% 수준이었으며,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는 약 68%였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 비율이 56%까지 떨어졌다가 3분기 들어 65%로 회복했다. 아직 1년 전 수준을 되찾지는 못한 것이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우리은행의 3분기 누적 순이익 비율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소폭 낮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 대비로는 68.2%에서 67.1%로, 하나은행 대비로는 73.2%에서 72.4%로 각각 낮아졌다.
올해 상반기 크게 벌어진 격차를 줄이기는 했지만, 연초부터 경쟁은행을 추격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던 정 행장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인 셈이다.
누적 순이익 증가율에서도 이런 차이가 확인된다. 우리은행의 증가율은 4.7%로 신한은행의 9.8%를 비롯해 다른 3개 은행에 모두 못 미쳤다.
3분기 단독 순이익 역시 KB국민은행 1조3509억 원, 신한은행 1조2252억 원, 하나은행 1조1946억 원에 이어 우리은행이 4위였다.
우리은행이 처음으로 분기 순이익 1조 원을 넘어서는 동안 경쟁은행들은 그보다 많은 이익을 거뒀다. 정 행장이 연임 심사에서 내세울 반등의 성과는 확보했지만, 경쟁은행과의 거리를 충분히 좁혔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른 셈이다.
◆ 비이자이익 회복·충당금 감소가 이끈 반등, 늘어난 부실채권은 부담
3분기 실적이 얼마나 개선됐는지와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반등의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은행의 3분기 비이자이익은 4060억 원으로 직전 분기의 2320억 원보다 75% 늘었다. 상반기 실적을 끌어내렸던 유가증권 관련 손익이 회복된 영향이 컸다. 우리은행은 상반기 유가증권 관련 손익에서 2885억 원의 손실을 냈지만, 3분기에는 소폭 이익으로 돌아섰다.
충당금 부담도 크게 줄었다. 3분기 충당금 전입액은 1454억 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44.5% 감소했다. 비이자이익이 늘고 충당금 부담이 줄어든 효과를 합하면 전분기 대비 세전이익 증가분의 약 95%에 해당한다.
상반기 실적을 압박했던 요인들이 완화되면서 순이익이 빠르게 회복된 것이다.
우리금융은 실적 발표 자료에서 우리은행이 “생산적 금융을 중심으로 우량자산을 확대하는 동시에 비용과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그룹의 실적 성장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충당금 부담 감소와 달리 일부 건전성 지표는 악화했다.
우리은행의 3분기 말 연체율은 0.46%로 전분기 말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29.8% 늘었다. 부실채권 대비 충당금 적립 수준을 보여주는 고정이하여신(NPL) 커버리지비율은 지난해 3분기 180.9%에서 올해 3분기 126.7%로 54.2%포인트 낮아졌다.
충당금 부담이 줄어 순이익이 늘어난 가운데 연체율과 부실채권은 증가한 것이다. 3분기의 낮아진 대손비용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지, 늘어난 부실채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실적 반등의 지속성을 판단할 변수가 됐다.
정 행장의 연임 여부는 이런 흐름이 연간 실적으로 확인되기 전에 결정된다.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9월30일 차기 우리은행장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했다. 금융권에서는 정 행장의 연임 여부가 12월 중순께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