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머리가 핑 돌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기는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있고, 몇 걸음만 옮겨도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이 옷을 순식간에 적신다.
잠시 그늘에 들어가도 달아오른 몸은 좀처럼 식지 않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폐까지 밀려든다. 햇볕 아래서는 물론이고 그늘에서도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찜통'이 전국을 덮쳤다.
경북 경산시와 포항시에는 올해 여름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폭염이 절정에 달했다. 기상청과 방역당국은 건강한 사람도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며 한낮 야외활동을 즉시 중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을 당부했다.
대구에 폭염 경보가 발효된 11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상인들이 파라솔을 설치한 가운데 시민들이 양산을 쓰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상청은 12일 오전 10시 경북 경산시와 포항시에 폭염중대경보를 발령했다. 지난달 1일부터 새롭게 도입된 폭염중대경보가 실제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폭염중대경보는 기존 폭염경보보다 한 단계 높은 최고 수준의 폭염특보로,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이거나 최고기온이 39도 이상인 극한 더위가 하루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극한 더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올해 새로 도입됐다.
경산과 포항은 이날 최고기온이 39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 경북 남부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겹치는 이른바 '열돔' 현상에 더해,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산을 넘으며 공기가 더욱 뜨거워지는 푄현상까지 겹치면서 전국에서도 가장 강한 폭염이 나타나고 있다. 분지 지형 특성상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점도 폭염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국적 무더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은 간밤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돌며 올해 첫 열대야를 기록했고, 폭염특보는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확대됐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서울 34도, 대구 36도, 포항 37도 등 31~37도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됐다.
기상청은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 '중단·이동·확인' 행동수칙을 즉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외 작업과 체육활동, 야외 행사는 가능한 한 중단하거나 연기하고, 무더위쉼터나 냉방시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지럼증이나 두통, 의식 저하 등 온열질환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시원한 장소로 옮겨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폭염중대경보 수준의 더위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온열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의 전체 사망위험이 평소보다 19%, 심혈관질환 사망위험은 14%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인구 기준으로도 사망 상대위험은 평소보다 16%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온열질환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누적 온열질환자는 535명, 추정 사망자는 2명이다. 지난해에도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7월 20~31일 전체 온열질환자의 30%가량이 집중 발생했다.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식중독 등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과 농축산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살모넬라균과 장출혈성 대장균 등의 증식이 쉬운 만큼 음식은 충분히 익혀 먹고 조리 전후 손 씻기와 식재료 교차오염 방지 등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농작물은 병해충 발생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축산농가는 축사 환기와 냉방, 충분한 급수 등 폭염 피해 예방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번 폭염은 13일까지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4~15일에는 중부지방과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비가 내리겠지만, 국지적으로 짧고 강하게 내리는 데 그치면서 무더위가 크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가 그친 뒤에는 높은 습도로 체감온도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이후 16~17일 남부지방과 제주, 19~20일 중부지방에는 다시 장맛비가 예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