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박스 커터(박스를 자를 때 쓰는 칼날 도구) 음모론'을 펼쳤지만, 그 주장은 그리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내내 링컨기념관 앞 인공 연못인 '리플렉팅 풀' 바닥에 새로 입힌 1400만 달러(한화 약 215억 원) 규모의 방수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조류로 물이 다시 녹조 낀 듯한 색으로 변한 이유를 두고 '반달리즘(공공시설을 고의로 파괴하는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링컨 기념관 앞 인공 연못(리플렉팅 풀)에 반달리즘 범죄가 일어난 것 같다고 발언하고 있다. ⓒ엑스(X, 옛 트위터) 갈무리
트럼프는 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제의 기물 파손범들이 칼을 들고 리플렉팅 풀로 들어갔다"며 "아마도 박스 커터 같은 종류의 칼로 리플렉팅 풀을 가로지르는 290~300피트(약 90미터) 길이의 칼자국을 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리플렉팅 풀을 재보수하기 위해 물을 다시 빼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장은 벗겨진 방수 페인트만큼이나 증거가 허술하다. 같은 날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은 트럼프의 주장을 더 의문스럽게 만들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연 회의에서 당시 리플렉팅 풀에 입히고 있던 방수 페인트는 칼로도 절대 흠집을 낼 수 없다고 단언하는 장면이 담겼다.
당시 트럼프는 "이것은 최소 50년은 갈 것이고 절대 새지 않을 것"이라며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칼이 있어도 절대 자를 수 없다. 아주 강하고, 강력하다. 강력한 고무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영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리플렉팅 풀의 새 방수 페인트칠이 칼로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장면으로 곧장 넘어갔다.
이는 5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발언과 정면으로 모순될 뿐 아니라, 일부 언론이 트럼프의 주장을 그대로 믿지 않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도 보여준다.
에드 오키프 CBS 뉴스 기자는 트럼프에게 리플렉팅 풀 주변 내셔널 몰에 주방위군과 경찰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반달리즘을 저지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의 주장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죽은 새끼 오리 한마리가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 인공 연못인 리플렉팅 풀의 녹조 낀 물 위에 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는 보안 인력을 많이 두고 있지 않았다"며 "누가 연못에 들어가 방수 코팅을 칼로 자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오키프가 계속해서 기물 파손의 구체적 증거가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있다. 증거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채 "350피트(약 106미터), 내 생각엔 250피트가 아니라 350피트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350피트짜리 틈" 자체가 충분한 증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오키프는 실제 그 대규모 흠집을 본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는 점을 짚었다.(트럼프가 이를 언급할 때마다 흠집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진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더 자세한 설명은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 물어보라며 책임을 넘겼다.
트럼프의 주장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오키프만이 아니었다. 엑스 이용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리플렉팅 풀의 녹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수천 피트에 달하는 배관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리플렉팅 풀의 새는 배관을 보수하지 않는다면 녹조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배관 보수를 하지 않는다면) 새로 방수 처리된 연못의 파란 바닥은 이내 다시 녹색 탁수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