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임시인도를 직접 요청한지 3주 만에 박왕열이 한국 땅을 밟았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 X
2026년 3월 25일 새벽 6시 34분께 아시아나 OZ708편이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오전 2시 35분쯤 필리핀 클라크필드를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이다. 일반 승객들이 탑승한 이 항공편에는 필리핀에서 복역 중이던 박왕열이 타고 있었고, 호송관 2명은 수갑을 채운 후 박왕열 양옆에 앉았다.
박왕열은 아침 7시 11분경 남색 야구모자와 회색 카디건을 착용한 채로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크로 가리지 않은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고, 소매를 걷어 올려 팔에 있는 문신도 그대로 드러났다.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했나”, “마약 밀반입 혐의를 인정하나”, “국내에 공범이 있나”, “범죄수익은 어디에 은닉했나” 등 쏟아지는 질문에 별다른 답변 없이 불쾌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박왕열은 한 인물과 눈이 마주치자 “너는 남자도 아녀”라고 해 시선을 모았다.
박왕열의 입을 열게 한 인물은 과거 필리핀 현지에서 그의 마약 밀매 조직을 직접 추적하고 보도했던 기자로 전해졌다.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이날 공항 영상에도 이 취재진을 알아보고 즉각적으로 발끈하는 박왕열의 모습이 담겼다. 현장에서 지목된 기자가 “남자도 아니라고요?”라고 되묻자 박왕열은 “응”이라고 대답했다.
1978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47세인 박왕열은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한 명으로, 텔레그램에서 ‘마약왕 전세계’라는 아이디로 활동해왔다. 국내에 마약류를 공급하는 등 대규모 마약 유통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박왕열은 영화 ‘범죄도시2’ ,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핵심 주범인 박왕열은 이듬해 3월 탈옥했다가 두 달 만에 검거됐다. 2019년 재탈옥에 성공한 후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유통을 시작한 박왕열은 2020년 10월 재검거돼 2022년 필리핀 대법원에서 징역 60년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에 대해 취재한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악인취재기’ 제작진을 향한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2023년 11월 방송된 JTBC ‘뉴스룸’은 “전날 박왕열이 자신을 인터뷰한 저희 PD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라며 “저희 취재진은 경찰에 이 내용을 신고하고 신변 보호를 받기로 했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뉴스룸은 “박왕열은 앞서 저희와 인터뷰에서도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다룬 사람을 청부 살해하려 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보도를 통해 공개된 카카오톡 대화에는 박왕열의 측근이 인터뷰어인 최광일 PD에게 JTBC 단독 보도가 담긴 유튜브 영상 링크를 공유하면서 “최 피디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는 메시지가 담겼다. 보이스톡을 여러 차례 시도한 박왕열의 측근은 “피하는 거죠? 톡 하세요”, “분명히 ○○○ 생각해서 형님이 올리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를 취재에 이용해서 불법 촬영하고 저런 식으로 편집해 뉴스 보도를 하냐”, “당신은 진짜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톡 쌩까면 그만이네”라며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복역 중에도 매달 3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마약을 한국에 유통해 온 박왕열은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필리핀 정상회담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에게 직접 임시인도를 요청하면서 10년 만에 국내 송환됐다. 박왕열이 송환된 뒤 X(구 트위터)에 ‘李 대통령이 지목한 마약왕 박왕열, 한국서 벌받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국민을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반드시 잡는다”라고 굳은 의지를 내비치며 “한필 우정과 정의를 위한 협력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사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