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인공지능(AI) 사업이 하나둘 진행될수록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가 AI 사업에서 택한 독자 노선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내 AI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꼽히면서도 정부가 판을 깐 국책과제에서는 잇달아 이름이 빠지는 반면, 해외에서는 한 국가의 AI 인프라를 떠받치는 파트너로 올라서는 상반된 장면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인공지능(AI) 사업이 하나둘 진행될수록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가 AI 사업에서 택한 독자 노선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진은 최 대표가 2025년 11월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단25(DAN25) 콘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모습. ⓒ네이버
9월2일 정보통신기술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정부 주도의 AI 사업에서 거리를 두면서 중동과 협력을 강화하는 등 보다 공격적으로 AI 사업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이버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모두의 AI' 사업에 불참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이 사업에는 SK텔레콤, 카카오, KT 컨소시엄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기존 독자 AI 파운데이션(독파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주요 플레이어가 뛰어들었지만 유력 사업자로 거론되던 네이버만 빠졌다.
불참의 이유로 사업 중복이 꼽힌다. 네이버는 올해 6월 대화형 검색 서비스 'AI 탭'을 정식 출시해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기반 챗봇을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구상한 무료 국민 챗봇과 성격이 겹친다.
그러나 한쪽에선 이번 불참으로 네이버가 국가 AI 프로젝트의 궤도에서 이탈해 독자 궤도로 옮겨간 흐름이 더욱 분명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네이버가 정부 AI 사업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분기점은 올해 1월부터다. 당시 네이버는 독파모 프로젝트 1차 단계평가에서 탈락했다. 국내 AI 산업을 주도해온 기업이 국가 기술주권 프로젝트에서 배제된 셈이지만, 이후 네이버는 보다 자유로운 행보를 보였다.
6월에는 네이버가 전체 개발자 조직에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드'를 전면 도입한 것이 알려졌고, 7월엔 엔비디아와 10억 달러(약 1조4800억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 계약을 끌어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이후 엔비디아의 지분 투자를 이끌어낸 국내 기업은 네이버가 유일해, 엔비디아와 협력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부 사업에서 발을 뺐다고 해서 정부가 내건 '소버린 AI'라는 목표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 대표는 특정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특화된 소버린 AI를 네이버의 글로벌 승부처로 꼽아왔다. 현재 네이버의 소버린 AI 구상이 가장 가시화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다.
네이버클라우드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립주택공사(NHC)의 합작법인 네이버 이노베이션은 9월1일 리야드에서 열린 글로벌 기술 전시회 'LEAP 2026'에서 사우디 부동산 등기기관 RER과 부동산·지방행정 분야 디지털 전환(DX)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서 8월에는 네이버의 디지털트윈 플랫폼이 사우디 정부의 지자체용 국가 표준 플랫폼으로 승인받았다.
국가 표준 지위를 확보한 직후 공공행정과 민간 생활 서비스 협력이 잇따르면서, 네이버가 현지에서 추진해온 지도 기반 슈퍼앱의 윤곽도 구체화됐다.
이는 사우디 진출 이후 3년여 만에 거둔 성과다. 네이버는 2022년 말 '원팀코리아' 일원으로 사우디와 인연을 맺은 뒤 2023년 3월 자치행정주택부와 국가 디지털 전환 MOU를 체결했고, 같은 해 10월 주요 도시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2024년 9월에는 중동 총괄법인 '네이버 아라비아' 설립 계획과 함께 사우디 데이터인공지능청(SDAIA)과의 협력을 발표하고 아랍어 기반 LLM 개발, 데이터센터 설립 등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을 확보했다. 2025년 5월 NHC와 합작법인 네이버 이노베이션 설립 계약을 마쳤고, 올해 4월에는 사우디 데이터센터 사업까지 반경을 넓혔다.
국내에서 정부가 정의한 소버린 AI 기준에 구애받는 대신, 다른 국가의 소버린 AI 파트너 자리를 직접 확보하는 경로를 택한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보고서에서 "네이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핵심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의 AI 인프라, 개발, 활용 등 전 주기적 분야에 걸쳐 진출한 유일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가 네이버를 LLM 개발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에는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자국 주도의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