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약 821조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확장재정을 편성하면서 2027년도 예산안 정국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획예산처의 2027년도 예산안 및 2026~2030 국가재정운용계획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인공지능(AI)·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성장의 과실을 양극화 완화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의 예산 증가율이 보건·복지·고용 분야를 크게 웃돌면서, 재정 확대의 혜택이 첨단산업 육성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27년 정부 예산안은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이끌 담대한 투자이자 재정 건전성 개선도 담보했다"며 "특별히 3대 메가 프로젝트, 미래대응기금, 자주국방 등을 포함한 전략적 예산이자 지방 균형발전 예산이고 국민의 생애주기별 지원을 강화하는 민생 예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7년도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 규모가 820조9천억 원으로 2026년도 본예산보다 93조 원(12.8%) 늘었다. 1년 총지출이 800조 원을 넘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12.8%로 높인 뒤 2028년 9%, 2029년 7%, 2030년 5%로 낮춰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관리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예산안의 핵심 축은 성장투자다.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 미래 성장엔진, 청년 성장단계별 지원, K자형 양극화 대응, 안전 등 5대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5대 분야에 투자되는 예산 규모만 282조8천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34%에 달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활용해 162조3천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신설한다.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미래 분야에 투자하고 일부는 향후 세수 변동과 재정수요에 대응하는 재원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분야별 예산 증가율이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41조2천억 원으로 올해(31조8천억 원)보다 29.7% 증가했다. 반면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289조 원으로 2026년 대비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장기 계획에서도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연평균 증가율은 15.2%이고,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7.5%로 절반 수준이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병도 원내대표가 2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초연금 개편은 예산안에서 성장과 복지 분야에 얼만큼 배분하는가와 관련된 논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예산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일 기초연금 수급자를 소득수준에 따라 세 구간으로 나눠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기초연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행대로 노인 70%라는 목표 수급률은 유지하되 소득 하위 30%에는 월 38만 원, 30~45%에는 물가연동을 반영한 35만9천 원, 45~70%에는 월 35만 원을 지급한다. 저소득 부부가구의 부부감액률은 현행 20%에서 10%로 낮추고, 소득·재산이 낮은 일부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도 기초연금 대상에 포함한다.
정부는 기초연금 전체 예산이 올해 23조1천억 원에서 내년 25조7천억 원으로 2조6천억 원 증가했으며 소득이 낮은 계층을 더 두텁게 보호하는 '하후 차등지급'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약 290만 명이 포함되는 소득 하위 45~70% 구간의 경우 기초연금액이 월 35만 원으로 동결돼 물가연동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사실상 ‘실질급여 삭감’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도 ‘충분한 투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통합돌봄 대상을 노인에서 장애인까지 확대하고 의료취약지역과 인구감소지역에는 지원액을 1.2~1.5배 가산하기로 했다.
정부는 복지 분야의 주요 확대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업 대상과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실제 지역 현장에서 필요한 재원이 충분히 뒷받침되는지는 국회 심사에서 따져볼 대목으로 보인다.
참여연대는 1일 논평을 통해 "지역사회 통합돌봄 지원을 늘린 것은 긍정적이나 지역통합돌봄이 제대로 정착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사업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지방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히 늘었는지는 국회 심사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162조 3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조성하는 미래대응기금도 지나치게 성장 분야에만 쓰이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기획예산처는 미래대응기금 중 52조9천억 원을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사업계정에, 109조4천억 원을 총괄계정에 할당한다. 그런데 2027년도에만 45조5천억 원을 4대 사업에 지출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미래대응기금은 불평등 대응에 최우선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프론티어 AI, 피지컬 AI, 우주 항공, 첨단바이오 등 첨단 산업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 투자는 이미 여러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은 이어 "미래대응기금은 '국민의 성장 사다리 구축'을 위한 불평등 대응 분야에 최우선으로 배분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성장산업에 대한 추가 투자보다 산업전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고용·소득 안전망, 주거·돌봄 등에 재정을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안타깝지만 지금은 전 정권이 만든 성장보릿고개라 일단 성장회복에 더 주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를 후퇴한 건 아니다"라며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니 좀 더 시간을 주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정부의 2027년도 예산안이 성장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에 관해 복지를 소홀히 여기는 예산안 편성 기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예산안이 거시경제 회복세에 부응할 수 있는 민생경제의 확실한 체감 회복을 이뤄낼 수 있도록 국회의 심의 과정에서 성장의 과실을 국민이 골고루 나눌 수 있는 방향에서 살피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