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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가 없어도 심리적 만족감이나 기분 전환을 주는 물질을 섭취하기도 한다. 그중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허용한 걸 '기호 식품'이라고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커피, 술, 담배 등이 있다. 기호 식품은 마약은 아니나 은근한 중독성이 있는데, 이는 산모라도 예외가 아니다. 술과 담배야 워낙 해롭다는 게 잘 알려져 있어서 애초 산모도 "해도 되냐"고 의사에게 물어보지 않는다(잘 참을 수 있냐는 문제는 둘째이고). 

[Dr. 허지만의 진료실 이야기] 임신 중 너무나 마시고 싶지만 찜찜한 커피 : 어디까지 허용될까?
임신 중 커피를 한 잔이라도 마시면 문제가 있는지를 두고 많은 임신부들이 고민한다. AI 이미지.

따라서 한국에서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산모에게 안전한지 "애매"하여 의사에게 물어볼 만한 기호 식품 성분은 사실상 '카페인'밖에 없을 듯하다. 커피뿐만 아니라, 차, 초콜릿, 에너지 음료 등 카페인을 신경 쓴다면 꽤 주의해야 할 식품들이 많다.

필자는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카페인이 걱정되면 '디카페인 커피 정도는 마셔도 괜찮나요?'라고 물어보지 않고 그냥 안 마시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산모가 출산 직후 임신 중 너무 먹고 싶었다며 가장 먼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요청하는 걸 보며, 카페인 섭취는 누군가에겐 절실한 문제라는 걸 느꼈다. 

심지어 카페인은 다양한 약과 음료 등에 흔하게 첨가되는 물질이라 피하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섭취한다는 문제도 있다. 카페인 함유 제품을 산모가 모르고 먹은 걸 나중에 알고 미지의 위험성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현재 산과학 교과서는 임신 중 카페인 섭취를 하루 300 mg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권장하며, 특히 하루 200 mg 미만의 섭취는 산모와 태아에게 유의미한 해는 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하루 200 mg을 카페인 섭취의 상한선으로 보는 셈이다. 자판기 일회용 종이컵 기준으로 일반적인 커피 1컵 정도는 양호, 2컵부턴 아슬아슬하다고 보면 된다.

애초 카페인은 왜 임산부에게 해로울 거라고 의심받을까? 카페인은 심장을 자극하고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태반은 산모의 혈액 속 유해 물질이 태아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장벽 역할을 하는데, 카페인은 분자량이 작고 지용성이 높아 태반 장벽을 아무런 제약 없이 통과한다. 따라서, 산모가 섭취한 카페인은 그대로 태아에게 전달된다. 

게다가 태아는 성인과 달리 카페인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 카페인이 훨씬 오래 잔류한다. 카페인은 태아의 심장을 과자극할 수 있고, 산모와 태반의 혈관이 수축하면서 태반을 통한 산소 및 영양 공급이 감소할 수 있다. 이러한 기전이 ‘저체중아 혹은 조산, 심지어 초기 유산을 유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우려하는 이론적 배경이다.

다만, 이론과 실제는 달라서 “정말 카페인을 섭취하면 문제가 발생하나?”에 대한 입증은 지금도 논란 중이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산모가 커피만 먹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개월의 임신 기간 동안 산모는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에 수많은 변수 중 카페인의 영향만을 걸러내는 건 커피에서 카페인을 추출하는 것보다 까다롭다.

논란의 시작은 초기 동물 실험이었다. 1970년대 말 카페인이 기형을 유발한다는 동물 연구가 많이 발표되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를 바탕으로 임산부에게 카페인 섭취를 가능한 피하거나 최소화할 것을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이 동물 연구의 한계이다. 예를 들어 많은 동물에게는 카페인 자체가 소량만으로도 치명적인 독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사망 직전까지 다다를 정도로’ 과하게 섭취해야 기형을 유발할 정도가 되는 것이니 동물 실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카페인을 섭취한 산모를 조사하는 대규모 역학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여러 연구가 수만 명의 산모를 조사하였지만, 의외로 카페인의 해로움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건 어려웠다. 

주요 변수는 술과 담배였다. ‘기호 식품’이라는 성격 때문인지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술과 담배도 같이 하는 경우가 유의미하게 많았다. 심지어 임신 중인데도. 따라서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커피 때문인지, 늘 같이 섭취하던 술이나 담배 때문인지 완전히 분리해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연구 자료가 축적되면서 1990년대부터는 하루 200 mg 정도의 ‘적당한’ 카페인 섭취는 태아 기형이나, 산과적 악영향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견이 모였다. 다만, 고용량 카페인 섭취는 유산 및 저체중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와 산과학 교과서 지침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권고사항이 하루 200~300 mg의 카페인 섭취를 안전선으로 잡아가던 중, 2021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대학의 잭 제임스(Jack E. James) 교수는 지난 20년간의 관찰 연구 1200여 편을 분석하여 해당 기준도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다만 관찰 연구는 여러 교란 변수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로, 현재로선 그의 주장은 “너무 안심하진 말자”라는 경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계의 주류 의견은 여전히 “하루 200 mg 미만의 카페인 섭취는 괜찮다”이다.

정 불안하다면 카페인 함량이 낮은 디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것도 대안이다. 그러나, 일말의 찜찜함조차 불안한 것이 산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심지어 평소 매일 커피를 달고 살았던 산부인과 여의사 지인은 임신하니 디카페인 음료조차 안 마셨다. 

본인도 학계의 권고는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성으로 아는 것과 감정이 내키는 건 별개라는 걸 느끼며 필자는 산모에게 적당히 절충하여 조언한다.

“임신 중에 가능하면 커피는 안 드시는 게 좋죠. 그렇지만 너무 먹고 싶다면 1잔 정도 마시는 건 괜찮으니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글쓴이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산모입원 전담 임상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아이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따라가며 시기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아울러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생각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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