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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승무원은 누구인가. 미소로 승객을 맞이하는 서비스 인력인가, 아니면 위기 상황에서 수백명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 요원인가.

이 질문에 답이 분명해질수록,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승무원의 외모 규정은 불편하고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허프 생각] 항공 승무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 장식 아닌 안전의 장비가 돼야 한다
항공 승무원의 이미지를 AI 합성 이미지로 표현했다. 

16년간 항공 승무원으로 일했던 그룹 신화 멤버 전진의 아내 류이서 씨는 23일 유튜브 채널 ‘내사랑 류이서’에서 입사 초기 훈련 과정에서 매일 아침 메이크업 검사를 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진한 빨간 립스틱과 같은 색의 매니큐어는 필수였고, 매니큐어가 벗겨지면 경위서를 써야 했다. 연차가 쌓인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술색을 연하게 했다가 '노 메이크업 같다'는 기내 평가를 받았고, 결국 화장을 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허프 생각] 항공 승무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 장식 아닌 안전의 장비가 돼야 한다
지난 23일 유튜브 채널 '내사랑 류이서'를 통해 류이서 씨는 입사 후 훈련 때 빨간 네일을 칠해야 했다고 말했다. ⓒ'내사랑 류이서' 유튜브 채널
[허프 생각] 항공 승무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 장식 아닌 안전의 장비가 돼야 한다
지난 23일 유튜브 채널 '내사랑 류이서'에서 류이서 씨가 연한 화장을 했다가 부정적인 기내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내사랑 류이서' 유튜브 계정

항공안전법상 객실승무원은 항공종사자의 한 유형으로, 비상 상황 시 승객의 안전 확보, 탈출 유도 및 응급조치, 항공기 안전 운항 보조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안전요원적 성격의 의무를 지닌다.

단정함을 넘어 지정된 아름다움을 강요받는 순간 승무원은 안전요원이 아니라 보여지는 존재가 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꾸밈 노동'이다. 꾸밈 노동은 업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특정한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 감정적 에너지를 포함한다. 승무원에게 요구되는 메이크업과 헤어, 네일 규정은 꾸밈 노동으로 여겨졌다. 

[허프 생각] 항공 승무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 장식 아닌 안전의 장비가 돼야 한다
2024년 5월 23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안전운항시설 및 안전관리체계 소개 행사에서 승무원들이 비상탈출 훈련을 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문제는 이 꾸밈 노동이 안전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몸에 밀착되는 유니폼, 장시간 착용해야 하는 불편한 구두, 두꺼운 화장은 모두 비상 상황에서의 신체적 대응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승무원의 본질이 위기 대응에 있다면 외형 중심의 규정은 고객과 노동자의 생사를 가르는 순간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식 변화는 최근 항공사들의 복장 규정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대한항공은 57년 만에 굽 높이 3~5cm 구두 착용 원칙을 완화하여 스니커즈 도입을 검토 중이다. 안경 착용 자율화에 이은 변화다. 제주항공과 에어로케이는 이미 운동화를 도입했다.

일하기에는 바지와 운동화가 더 편하다는 것은 이미 현장에서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다. 복장 완화의 흐름은 승무원을 보여지는 존재에서 움직이는 안전 인력으로 다시 정의하려는 흐름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반하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승무원의 외모를 평가하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항공 산업이 오랫동안 승무원을 브랜드의 얼굴로 활용해 온 결과다. 광고와 유니폼, 채용 기준까지 외형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승무원은 전문 인력이라기보다 소비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아 왔다.

결국 꾸밈 노동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산업이 만들어낸 구조적 요구에 가깝다. 서비스직이라는 이유로 외모를 요구하는 관행 역시 되짚어봐야 한다. 서비스의 본질은 안전과 정확성, 문제 해결 능력에서 나온다. 위생과 단정함을 넘어 특정한 미적 기준까지 요구하는 순간 승무원의 노동은 본래의 목적, 즉 안전 업무 수행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건조한 기내 환경에서의 두꺼운 화장은 피부와 안구 건강을 해치고, 불편한 유니폼과 구두는 하지정맥류와 척추 질환으로 이어진다. 항상 완벽한 외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은 정신적 부담을 키우고, 여기에 외모에 대한 무례한 평가와 성희롱적 시선까지 더해지며 감정 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회사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꾸밈 시간과 비용은 노동자의 몫이 된다. 이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 임금 삭감과 다르지 않다.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구조 또한 차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기업의 이미지는 화려해질지 몰라도, 그 이면에서 노동자의 삶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해외 항공사들은 이미 변화의 흐름에 탑승했다. 버진 애틀랜틱은 2019년 여성 승무원의 화장 의무를 폐지하고 바지 유니폼을 기본으로 도입했다. 2022년 9월부터는 성중립적 유니폼 정책을 시행해 개인의 정체성에 따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은 자체 조사를 통해, 직장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이 높아지고, 결국 고객 경험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나이티드 항공 역시 성별에 따른 외모 규정을 통합하고 메이크업, 네일, 헤어스타일에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문신과 피어싱도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장 피드백을 반영해 활동성을 중심으로 한 유니폼과 스니커즈를 도입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기준은 분명하다. 이미 글로벌 항공사들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기능을 기준으로 복장을 재설계하고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승무원을 마주할 때 무엇을 먼저 바라보고 있는가. 단정하게 정돈된 얼굴인가, 아니면 위기 속에서 수십 명의 생명을 지켜내는 손길인가. 승무원의 복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입는 안전 장비에 가깝다. 그 위에 덧씌워진 꾸밈을 걷어낼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은 미용이 아니라 역할이고 이미지가 아니라 기능이다. 꾸밈 노동이 아닌 안전 노동이 중심이 되는 기준이 항공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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