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삶에 지친 어른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 한 곡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불안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을 진솔하게 풀어낸 가사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입소문을 타면서다. 그러나 국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오른 이 곡의 가수가 정체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중이다. 해당 곡의 작사 및 프로듀싱만 사람이 했을 뿐, 작곡·편곡 및 보컬은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AI 아티스트 '머무르'의 곡 '꿈꾸는 어른이 되었나요?' 뮤직비디오 캡쳐(왼쪽), 멜론 차트 3위를 달성한 '꿈꾸는 어른이 되었나요?'. ⓒ유튜브, 멜론
15일 오전 7시 기준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 톱100에서 음악 크리에이터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가 3위에 올랐다. 지난 6월 발매된 이 곡은 9월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지난 2일 18위에 진입한 뒤 약 열흘 만에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해당 성적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리센느의 'Deja Vu'보다 높은 순위이며, 유튜브 뮤직 한국 인기곡 톱100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유명 아이돌과 정상급 가수들이 경쟁하는 주요 음원차트에서 AI 창작곡이 최상위권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 AI 커버곡,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5백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인 가수 '딘'의 걸그룹 '뉴진스' 곡 'Hype Boy' AI커버곡. ⓒ유튜브
AI 보컬 기술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같은 관심은 새로운 AI 창작곡보다 'AI 커버곡'을 통해 먼저 대중들과 친숙해졌다. AI 커버곡은 기존 음악의 보컬을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변환하거나, AI 기술을 활용해 원곡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음악을 일컫는다.
AI 커버곡은 2023년을 전후해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화제를 모았다. 실제 가수가 부르지 않은 노래를 유명 가수의 목소리로 구현한다는 점이 관심을 끈 것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음성 합성 기술이 대중화하면서 전문적인 개발 지식이 없어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커버곡을 제작할 수 있게 된 점 역시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도 가수 딘이나 임재범의 목소리로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르게 한 AI 커버 영상이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기존 노래를 낯선 목소리로 재해석하는 AI 커버곡이 대중에게 기술의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 SM도 뛰어든 'AI 작곡 수업'... 저작권료는 어떻게 될까
GxChUrrY4bc
AI와 음악의 결합은 온라인 콘텐츠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교육 현장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산하 교육기관에서는 AI 작곡 수업이 개설됐으며, 서울예대는 올해 1학기 '사운드디자인기초' 수업에서 학생들이 생성형 AI 음악 프로그램 수노(Suno)를 활용해 음악을 제작하도록 했다. 한림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제안한 'AI 시대 음악 이해와 창작' 교과목이 '학생 참여 교양 교과목 개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AI를 활용한 창작물이 늘어나는 추세는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AI를 활용해 제작한 음악·영상·도서 등 콘텐츠의 저작권 등록 건수는 1054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등록 건수인 367건의 약 2.9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AI가 창작에 관여한 음악의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누구에게 지급할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AI로 만든 창작곡은 저작권료를 받기 어렵다. 현행 국내 저작권 체계에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저작권 보호의 주요 요건으로 본는데, AI가 자율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지난 8월 인간이 창작 과정에서 '실질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 AI를 활용한 저작물도 등록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이 창작한 부분과 AI가 생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구분할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해당 기준을 철회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역시 음저협에 신탁 등록해 관리하는 방송·공연·매장 배경음악(BGM)·노래방 등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현재 받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음원 스트리밍을 통한 수익은 별개다. 매체 취재 결과 해당 곡은 멜론에 정식 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스트리밍으로 발생한 수익은 기획사나 제작사에 정산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인 국내 음원 유통 구조에서 스트리밍 매출의 약 48%는 음반제작자와 기획사 몫으로 배분되며, 유통사는 해당 금액에서 수수료를 제외한 뒤 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만든 음악의 저작권 인정 여부와 별개로 플랫폼을 통한 음원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