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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발길을 돌리고, 투표함 반출을 둘러싼 대치까지 벌어졌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이 국민의 참정권 침해와 선거 불신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망조 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부정선거 음모론 횡행하는데 투표용지도 못 챙겨 '부실' 자인하고 참정권 해쳤다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투표함 반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밤새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관리의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투표용지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혼란이 빚어졌다.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긴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장면까지 나왔다.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책임져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가장 기초적인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는 이유다.

망조 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부정선거 음모론 횡행하는데 투표용지도 못 챙겨 '부실' 자인하고 참정권 해쳤다
4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마련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송파구 개표소의 개함부 작업대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특히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다. 이후에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싼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세력의 집결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수백 명이 투표소 인근에 모였고, 일부는 투표함 이송을 막아서며 현장 긴장이 고조됐다.

일부 시민과 유튜버들은 연장 투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개표가 이뤄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투표함 반출을 저지했고, 현장에서는 수시간 대치가 이어졌다. 선관위는 법률상 개표 중단 사유가 아니라며 투표함 이송을 추진했지만, 선거 관리 부실이 결국 개표 절차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망조 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부정선거 음모론 횡행하는데 투표용지도 못 챙겨 '부실' 자인하고 참정권 해쳤다
4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항의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3일 오후 9시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보수성향 시민단체는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용지 부족은 서울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 등 모두 14개 투표소에서 발생했다. 특히 송파구 일부 지역은 전체 유권자의 절반 수준만 투표용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투표용지 확보는 선거관리의 출발점이다. 선관위는 유권자 수와 과거 투표율, 사전투표 참여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필요한 물량을 산정하고 배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 인쇄와 긴급 수송에 의존해야 했다면 현장 실수가 아니라 선거 운영 시스템 전반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 사무총장은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투표용지를 부족한 투표소로 이송했고, 대기 중인 유권자들은 마감 시각이 지나더라도 모두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재선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4일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사안은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현재 진행 중인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투표소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투표함은 정상적으로 개표소로 이송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개표 종료 후 즉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국민의 참정권 행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원인과 대책을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망조 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부정선거 음모론 횡행하는데 투표용지도 못 챙겨 '부실' 자인하고 참정권 해쳤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지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항의 집회 현장을 찾아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표 용지 부족 사태로 이미 남겨진 후유증은 적지 않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흔들어 온 부정선거 음모론에 새로운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선거 결과가 아니라 선거 절차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민주주의의 정당성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인 만큼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선관위를 지휘·감독할 권한이 없어 선거 관리에 관한 구체적 조치를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3일 브리핑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기관으로서 일부 지역 주민들의 투표권 행사와 개표 관리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며 "청와대는 일련의 상황을 엄정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망조 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부정선거 음모론 횡행하는데 투표용지도 못 챙겨 '부실' 자인하고 참정권 해쳤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나서며 선관위 앞 지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항의 집회 현장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힙뉴스

여야도 한목소리로 선관위의 책임을 촉구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를 잇따라 항의 방문하며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를 "중대한 참정권 침해"라고 규정하며 선거 연기를 요구했다.

반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개표 중단이나 재투표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설치를 규정한 독립 헌법기관이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를 관리하고 선거법 위반 단속, 정당·정치자금 사무, 국민투표 관리 등을 담당한다. 행정부와 국회, 법원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 이유도 오직 국민의 참정권을 공정하고 빈틈없이 보장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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