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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돌이 지난 아기가 열성경련을 일으킨 뒤 40도에 가까운 고열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앞을 지키던 경호원은 "당직 소아과 의사가 없다"며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안내했다. 

#. 임신 29주차였던 30대 여성은 더 극단적인 상황을 맞았다. 응급 분만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충북 청주에서 약 280km 떨어진 부산까지 이송됐지만, 그 과정에서 병원 6곳이 전문의 부재 등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다. 결국 태아는 끝내 생명을 잃었다.

출산과 응급의료 현장에서 비극적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다. 출산에는 '애국'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태어난 생명을 안전하게 받아낼 분만실과 아픈 아이를 바로 치료할 소아과 응급실은 사라지고 있다. 

출산하면 현금 1800만 원 주지만, 응급 분만 산모는 갈 곳 없어 응급실 '뺑뺑이'
고위험 산모가 들것에 실려 권역 응급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AI 합성 이미지.

올해 경기 고양시 기준으로 첫째 아이를 낳을 경우, 첫해에만 부모 급여와 출산지원금 등을 합쳐 약 179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부모 급여와 첫만남이용권 등 현금성 지원에 연간 약 3조 원대 후반의 예산을 쏟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현금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아이가 아플 때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는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낮은 수가 구조와 인력 부족, 민원과 의료 소송에 따른 부담 등으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의 폐업이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대기하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병원 응급실 역시 인력 부족으로 소아 진료를 제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라'는 출산 장려 정책의 메시지와 달리, 산모와 아이는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아이 낳으라는데, 왜 병원은 없나

출산하면 현금 1800만 원 주지만, 응급 분만 산모는 갈 곳 없어 응급실 '뺑뺑이'
4월 22일 경기도 고양시 CHA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출생률은 소폭 반등하고 있다. 합계출생률은 2023년 0.72명에서 2024년 0.75명, 2025년 0.8명으로 올랐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월 합계출산율은 0.93명으로 1월(0.99명)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러한 흐름과 달리, 출산을 떠받칠 의료 인프라는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특히 분만 의료기관 감소는 구조적 문제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2013년 706곳이었던 전국 분만 산부인과는 2023년 말 기준 463곳으로 줄어 약 34.4% 감소했다. 저출생에 따른 수익성 악화, 낮은 의료 수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으로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심화됐다.

보건복지부 분만 취약지 지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250개 시·군·구 중 72곳(28.8%)은 분만실이 없거나 산부인과 자체가 없는 '분만 취약지'였다. 일부 산모들은 원정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인구 감소 위험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는 출산 장려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인구 소멸 위험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나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소아 의료 인프라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만은 의사 한 명이 아닌 팀 의료의 영역

출산하면 현금 1800만 원 주지만, 응급 분만 산모는 갈 곳 없어 응급실 '뺑뺑이'
의사의 뒷 모습. AI 합성 이미지

출산은 산모에게 큰 신체적 부담을 주는 의료 행위로, 상당한 통증과 위험을 동반한다. 특히 응급 제왕절개는 복부와 자궁을 절개하는 고위험 수술로 분류된다.

분만은 예정된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생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응급 상황의 성격을 지닌다.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동시에 다루는 고위험 의료 행위로, 자궁이완증에 따른 대량 출혈이나 양수색전증과 같은 합병증은 짧은 시간 안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 전문의뿐 아니라 마취과, 소아청소년과 등 여러 진료과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팀 기반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시험관 시술 등으로 쌍둥이 임신이 늘면서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마취과의 유기적인 협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병원들은 고위험 산모의 응급 상황에서 ‘전문의가 없다’, ‘병상은 있지만 신생아중환자실(NICU)이 가득 찼다’는 등 의료적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응급 상황에서의 1분 1초는 생명을 좌우하지만, 이를 감당할 의료 체계를 갖춘 병원을 빠르게 찾기란 쉽지 않다. 이와 동시에 의료진은 법적 책임 부담 때문에 방어적 진료로 내몰리고 있다. 환자를 수용했다가 결과가 나쁘면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위험이 의료 공백을 더욱 키우고 있다. 

국가 책임제 목소리 높아져 

정부는 지역 내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의 이송부터 치료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책임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고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산모들이 분만실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비극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이는 인력 확보라는 근본적 처방이 빠진 시스템 구축이 결국 '서류상 대책'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응급 상황 발생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의료진은 24시간 대응 가능한 당직 체계 하에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의사 개인의 희생과 사명감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진이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응급 분만팀 운영으로 발생하는 병원 적자를 국가가 보전하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 강화와 수가 구조 개선 등 국가 차원의 제도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한 현금 지원 확대만으로는 출산 환경 개선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의 구조적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산모와 아이를 보호할 의료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다면, 출산 장려 정책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장에서 부모들이 기대하는 것은 위급한 순간에도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의료 안전망이다. 그 기본적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출산을 둘러싼 불안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5월5일 어린이날은 아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인 만큼,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의료 체계의 중요성 역시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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