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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이벤트를 여는 것은 당연하고, 신부의 친구들이 모여 선물과 함께 결혼을 축하하는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처럼 비교적 낯선 이벤트도 등장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하는 만큼 '새로운 이벤트'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허프 트렌드] SNS에 난리 난 태아 성별 공표 이벤트 '젠더 리빌' : 베스킨라빈스 민폐 고객까지
'젠더 리빌'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색소를 분사하는 남자(왼쪽), 서울 한 배스킨라빈스 매장의 모습. ⓒX, 연합뉴스

‘젠더 리빌’(Gender Reveal) 역시 최근 급격히 주목받고 있는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지난 6일 구글 트렌드에서 ‘젠더 리빌’의 검색 관심도를 살펴보면 최고치인 100을 기록했다. 불과 사흘 전인 4월3일 관심도가 9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치솟은 셈이다.

젠더 리빌은 2008년 미국의 블로거 제나 카르부니디스(Jenna Karvunidis)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임신 중이던 제나는 태아의 성별을 가족·지인에게 알리기 위해 케이크를 잘랐을 때 안쪽이 분홍색으로 보이게 했다. 이를 블로그에 올린 것이 온라인에 확산하면서 새로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주위에 흥겹게 알리는 행사로 발전해 왔다. 

일반적으로 젠더 리빌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풍선 상자 등 겉으로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장치를 준비한 뒤, 이를 자르거나 열었을 때 안쪽에서 분홍색이면 딸, 파란색이면 아들이라는 식으로 태아의 성별을 공개하는 것이다.

부모 모두가 성별을 알고 가족과 지인에게 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부모는 모른 채 주변인이 준비해 깜짝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부부 중 한 명만 먼저 알고 있다가 상대에게 공개하는 방식도 적지 않다. 핵심은 결국 성별을 확인하는 순간의 반응에 있다. 놀라거나 울거나 환호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이를 SNS에 공유하며 콘텐츠의 일종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문제는 젠더 리빌이 최근 '보여주기형 퍼포먼스'로 빠르게 변질되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형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젠더 리빌과 연관된 해외 영상을 보면 공공장소에서 촬영을 위해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거나, 풍선 종이조각 색소분사 드론 폭죽 등 각종 연출 장치를 동원하면서 타인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허프 트렌드] SNS에 난리 난 태아 성별 공표 이벤트 '젠더 리빌' : 베스킨라빈스 민폐 고객까지
'젠더 리빌'을 위해 색소를 분사하는 사람들. ⓒX

아이의 성별을 알리며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회수와 화제성을 위한 연출 장면으로 변질되면서 보는 이들의 반감과 거부감을 사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잡음이 커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임신부들 사이에서는 ‘배스킨라빈스 젠더 리빌’이 유행하며 과도한 요구에 직원들 볼멘 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배스킨라빈스 젠더 리빌은 태아 성별이 적힌 종이를 직원이 받아 아이스크림(남자는 블루, 여자는 레드)을 담도록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이스크림을 그냥 담지 않는다. 가로로 층층이 쌓는 것은 물론, 사이즈 선택 후 맛 선택(성별에 따라), 중간층(성별 공개 메인 아이스크림) 안 보이게 위층 색으로 완전히 덮기, 가득 채우면 뚜껑에 아이스크림이 묻어 색이 노출될 수 있으니 평평하게 담기 등 포장에 대한 주문 팁까지 공유되며 매장 직원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허프 트렌드] SNS에 난리 난 태아 성별 공표 이벤트 '젠더 리빌' : 베스킨라빈스 민폐 고객까지
서울 강남구 워크숍 바이(Workshop by) 배스킨라빈스에서 열린 프로모션. ⓒ연합뉴스

이에 일각에서는 바쁜 영업 현장에서 개인적 이벤트를 위해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행위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장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 부담과 거절하기 힘든 감정 노동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목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결혼 문화 변화와도 묘하게 충돌한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결혼 자체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것뿐 아니라, 결혼을 하더라도 예식의 형식과 규모를 최대한 줄이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혼은 하되 과도한 비용이 드는 결혼식은 꼭 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웨딩홀 대신 공공시설이나 야외 공간, 소규모 하우스웨딩, 가족 중심 식사 자리 등 간소하고 실용적인 스몰 웨딩을 선호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실제로 서울시의 공공예식 지원사업 ‘더 아름다운 결혼식’은 2023년 75건에서 2024년 155건, 2025년 280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2월 20일 기준 예약이 506건에 달했다. 서울시 역시 100인 미만의 스몰웨딩과 친환경, 간소형 예식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의 다수가 전통적 결혼식조차 ‘과한 비용과 형식’으로 인식함에도 부룩하고 젠더 리빌에 있어서는 유난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젠더 리빌 문화가 출발할 때는 과장된 소비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젠더 리빌의 시초인 제나는 젠더 리빌을 두고 '아들이냐 딸이냐'를 떠들썩한 게 아니라 조용히 알리고 싶어 마련한 행사였다고 밝혔다. 

[허프 트렌드] SNS에 난리 난 태아 성별 공표 이벤트 '젠더 리빌' : 베스킨라빈스 민폐 고객까지
2024년 10월 '임산부의 날'을 맞아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차병원에서 열린 '온리 차 데이'(Only CHA day)행사에서 임산부와 가족들이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강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전 임신 과정에서 유산을 겪은 뒤, 이번에는 처음으로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임신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워 이를 기념했다는 것이다. 즉 초창기 젠더 리빌은 오늘날처럼 떠들썩한 행사라기보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와 축하의 감정이 더 짙은 자축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애초 젠더 리빌은 거창한 이벤트에 따른 도파민 충족이 아니라, 임신 초기의 불확실성을 지나온 개인적 기쁨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적인 감정은 SNS와 영상 플랫폼을 거치며 점점 다른 방향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임신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는 안도감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더 극적인 리액션, 더 눈에 띄는 연출, 더 화제가 되는 장면이 중심이 됐다. 

새로운 기념 방식이 생겨나는 것 자체를 문제가 될 수 없다.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특별한 형식으로 축하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방식이 과장된 연출, 타인의 고생, 조회수와 기록을 위한 보여주기 쪽으로 흘러간다면 젠더 리빌은 건강한 축하 문화로 자리 잡기보다 주변의 반감으로 인해 오히려 빠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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